[내일을 열며-박강섭] 축제의 힘
입력 2014-01-23 01:34
지금 강원도 화천에서는 올해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승격한 산천어축제가 한창이다. 얼음구멍을 뚫고 산천어를 잡는 얼음낚시는 동심을 자극하는 겨울레포츠이다. 하얀 빙판 위에 수만 명이 쪼그려 앉아 산천어를 낚는 축제가 외국인 눈에는 신기하게 보인다. 미국 CNN이 2011년 화천 산천어축제를 ‘세계 7대 겨울 불가사의’로, 세계축제협회(IFEA)가 지난해 화천을 세계축제도시로 지정한 이유일 것이다.
최근에는 중국 하얼빈 빙등축제, 캐나다 퀘벡 윈터카니발, 일본 삿포로 눈축제에 이어 화천 산천어축제가 세계 4대 겨울축제로 부상하면서 외국에 축제를 수출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해 23일간의 행사 기간 동안 인구 2만5000명의 산골도시에 몰려든 관광객은 140만여명이나 됐다. 외국인 관광객도 주민보다 많은 3만여명이 다녀가 지난해 축제로 거둔 직접경제효과는 600억원을 웃돈다. 축제 한 건으로 화천군민 전체가 한 해를 먹고 산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올해로 11회를 맞은 화천 산천어축제의 성공은 약점을 강점으로 만든 역발상의 결과물이다. 화천은 북한과 마주한 군사도시로 각종 규제에 얽매여 지역개발에 어려움이 많았다. 지역상권은 외출군인과 면회가족이 소비하는 군인경제에 의존해야 했다. 산과 강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청정도시이지만 한겨울엔 매서운 한파로 사람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민하던 화천군은 관광비수기인 한겨울에 얼음낚시 축제를 열어 관광객을 불러 모으겠다는 역발상을 실천에 옮겼다,
축제는 첫해부터 기대 이상이었다. 이름조차 낯선 산골도시에 인구의 10배에 이르는 22만명이 찾아왔다. 4회 축제 때는 100만명을 돌파했고, 2006년부터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입장료를 내면 지역 농특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상품권을 나눠줘 대박을 터뜨렸다. 축제는 진화했다. 축제장에 운집한 관광객을 읍내로 유인하기 위해 선등거리를 조성하자 지역상권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는 화천 산천어축제에 버금가는 축제들이 많다. 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보령 머드축제를 비롯해 진주 유등축제, 함평 나비축제 등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축제이다. 한국의 축제가 이처럼 급성장을 한 데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001년부터 경쟁을 통해 축제의 질을 높이는 문화관광축제 제도를 도입하고 예산을 지원한 덕분이다.
그러나 상당수 지역축제는 혈세를 축내고 자치단체장의 치적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면서 우후죽순 생겨난 축제는 한때 1500여개로 늘어났다. 벤치마킹을 한다며 이웃 지자체의 축제를 베끼는가 하면 연예인들을 불러 예산을 낭비하는 사례도 적지 않아 ‘축제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급기야 정부가 ‘축제 수술’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08년 축제 통폐합을 추진하면서 매년 문화관광축제를 축소하고 지원금도 줄여 나갔다. 문화관광축제는 2009년 57개에서 올해 40개로 줄어들었다. 2011년 대표축제 일몰제가 도입되고, 지난해에는 신규 진입을 늘리기 위해 일몰제를 확대했다. 잘나가던 축제가 예산지원이 끊기면서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문제는 안전행정부가 지난해 말 무분별한 지역축제를 구조조정하기 위해 지방재정영향평가제를 도입하면서 지역축제가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실 축제를 퇴출시키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전통문화의 보존과 재현을 위해 필요한 축제까지 수익성이 낮다고 없애면 국민의 문화 향수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일본의 축제가 2만개가 넘는 현실을 감안하면 축제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축제는 부단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진화하는 생물체이다. 학계 등에서 인위적 구조조정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까닭이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