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여당에 나눠준 ‘박근혜 시계’ 네티즌들은 왜 흥분할까요?

입력 2014-01-22 17:33 수정 2014-01-22 22:54


‘박근혜 시계’가 네티즌들 마음에 불을 지르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에게만 나눠준 손목시계(사진) 때문입니다.

홍문종 사무총장은 시계를 당협위원장들에게 배포하며 “6월 4일 잘 안되면 우리 말마따나 개털”이라고 했답니다. 6월 4일은 전국동시 지방선거일입니다. 22일 이 소식을 전하는 기사마다 “선거법 위반이다” 혹은 “아니다. 관행이다”라는 찬반 댓글이 수백개씩 붙었습니다.

대통령 시계가 관행인 것은 맞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 청와대를 방문한 새마을지도자들에게 선물로 줬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시계를 만들어 뿌렸습니다. ‘힘 좀 쓴다는’ 사람은 예외 없이 차고 다녔죠.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시계도 제작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42일 만에 환경미화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시계를 선물했습니다. 모두 권력의 상징인 봉황에 대통령 친필 사인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청와대는 시계 제작에 미온적이었습니다. 권력자와 거리가 가깝다는 증표로 통용되는 게 영 못마땅해서라고 들었습니다. 차라리 김치 담는 반찬통이나 장보기용 손가방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시계를 만들어 광복절을 맞아 청와대를 방문한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추석 때는 새누리당 의원들에게도 ‘하사’했고요.

박근혜 시계를 두고 네티즌들이 필요이상 흥분하는 이유는 뭘까요. 댓글을 살펴보면 중심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습니다.

박근혜 시계를 몰아세우는 쪽은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 전에 열린우리당에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는 말 한마디 했다가 탄핵 당했다”거나 “노통 탄핵에 비하면 시계 살포는 사형감”이라고 반응합니다.

반면 노 대통령을 폄하하는 쪽에서는 “중소기업에서 만드는 싸구려 시계인데 노무현 피아제 시계랑 비교하는 건 모순”이라며 개당 1억원이 넘는다는 명품 피아제 시계를 슬며시 끼워 넣습니다. 2009년 노 대통령 수사 당시 등장한 이 시계는 온갖 억측을 불러왔습니다. ‘논두렁에 버렸다’는 보도가 대표적이죠. 노 대통령을 비난하는 단골메뉴입니다.

사실 이런 논쟁은 불필요합니다. 선거법 위반을 확인하려면 박근혜 시계가 새누리당 의원이나 당협위원장 손에서 선거구민에게 직접 건네지는 현장을 포착해 신고하면 됩니다. 여야의 정쟁이 실체가 없는 이유입니다.

이 타이밍에 정말 친절한 쪽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입니다. 선관위가 전날 새누리당에 보낸 안내문을 입수해 살펴보았습니다. 제목은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박근혜 손목시계 제공 관련 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선관위는 선거구민이 아닌 자, 보좌진 선물용, 벼룩시장 기부(1∼2개만), 명절맞이 저소득장애인 위문상품 기부 등이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선관위가 수시로 의원들의 선거법 위반 여부 질의에 답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번에는 친절해도 너무 친절해 보입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