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변호인·더 테러 라이브·설국열차·관상… 스크린도 안방도 정치에 푹 빠졌다
입력 2014-01-23 01:32
지난해 KBS 방송문화연구소 조사결과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제는 정치였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가상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현실 정치는 막장 드라마 못지않다는 이유로 외면받지만 정치를 소재로 삼은 작품에는 이목이 쏠린다. 특정 인물과 사건에 대한 견해가 쏟아지고 갑론을박 치열한 논쟁이 펼쳐지는 일도 예사가 됐다. 극적 갈등과 반전, 사회적 메시지를 담기에 이보다 좋은 그릇이 없다는 평가와 함께 정치 과잉, 현실 도피라는 비판이 동시에 나온다.
◇TV·극장 할 것 없이 정치 열풍=지난 4일 첫 방송을 시작한 KBS ‘정도전’은 시청률 10%를 가볍게 넘으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제작 기간만 2년, 총 제작비 135억원이 투입된 이 드라마는 고려 말기 개혁파로 조선을 설계했지만 이상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최후를 맞는 정도전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담는다. 정통 정치 사극이 귀환하자 중장년층 남성 시청자들이 응답했다. 시청률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60대 남성(17%)과 50대 남성(12%)이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였다.
정치 드라마는 중장년층 남성 시청자들을 공략하면서도 다양한 변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정도전’은 MBC ‘제5공화국’(2005)과 SBS ‘코리아 게이트’(1995)처럼 정공법을 택했다. KBS ‘프레지던트’(2010)와 SBS ‘대물’(2010) ‘야왕’(2013)은 대통령을 소재로 했지만 멜로드라마에 가까웠다. 방영 중인 MBC ‘기황후’도 정치적인 색채는 옅지만 ‘선덕여왕’(2009)처럼 사극의 핵심요소라 할 수 있는 배신과 암투, 복수를 담아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다음 달 첫 방송되는 SBS ‘쓰리 데이즈’는 아예 대통령 실종사건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뤄 벌써부터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극장가는 안방극장보다 더욱 정치에 푹 빠진 모양새다. 지난해 개봉한 ‘설국열차’는 계급 간의 갈등을 정면으로 다뤘고, ‘더 테러 라이브’는 비이성적인 공권력을 조롱했다. ‘관상’과 ‘집으로 가는 길’도 정치·사회적인 메시지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정치 코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삼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변호인’으로 절정에 달했다.
◇대리만족 VS 현실도피=정치를 소재로 삼았다고 해서 모두 흥행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와 멜로 사이에서 겉돌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한 KBS ‘총리와 나’가 대표적이다.
반면 ‘변호인’의 경우 지난해 불거진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과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을 통한 대선 불복 이슈가 묘한 마케팅이 됐다.
강성률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는 “‘변호인’ 흥행에는 현 여권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했다”며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이 영화는 정치적 자장 안에서 움직인다. 정치적으로 만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소비된다”고 밝혔다.
정치 드라마와 영화가 쏟아지는 것에 대한 견해도 크게 엇갈린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치 드라마와 영화가 흥행하는 것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기 쉽고,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 정치에 대리만족이라도 느끼고 싶은 간절한 욕구 때문”이라며 “지나간 사건을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묘사한다면 다양한 작품들이 관객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희문 인하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는 ‘변호인’ 흥행에 대해 “영화에 대한 지나친 몰입은 현실 도피나 다름없다”며 “작게 보면 특정 영화의 흥행 성공을 보여주지만 넓게는 우리 사회가 영화에 중독 증상을 보이며 문화적 퇴행을 증명하는 사례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