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진 목사의 시편] 행복은 신앙에서

입력 2014-01-23 01:31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 행복의 정의가 다르고 기준도 달라서 어떤 이들은 가난하고 병약해도 행복을 느끼며 살고 다른 이들은 부유하고 건강해도 불평과 원망만 하며 살기도 한다.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인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행복도 순위의 상위에 있고 최부국으로 알려진 북유럽 나라들의 국민들이 불행을 느끼며 자살율이 높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이가 들면 행복해진다는 말이 있지만 고령이 될수록 외롭고 고독하고 심리가 불안정한 것은 왜일까. 행복은 확실히 경제적 수준이나 건강, 명예나 권력, 힘이나 실력, 연륜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사랑, 진리, 희망, 열정, 자유, 정의, 평등, 인권 등과 같이 불가시적인 요소의 유무에 달려 있다는 말이 옳은가. 내면적이요 추상적이요 형이상학적인 것에 만족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그럴 법한 이야기요, 일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자유가 있고 진리가 가득하고 정의와 평등이 있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괴테는 기쁜 노동이 행복이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불행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그렇다. 신앙적 가치관과 세계관이 삶의 태도를 결정하고 그 태도가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사람은 배운 대로 사는 존재다. 농사일을 배운 사람은 농부로 살고,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운 사람은 어부로 산다. 의학을 배운 사람은 의료계에서, 가르치는 것을 배운 사람은 교사로 산다.

그러나 무엇을 하며 살든지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것은 직장의 상황이나 직업의 종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직무나 업무를 행하는 마음의 자세와 생각, 그리고 태도가 결정한다.

동일한 임금을 받는 세 사람이 예배당 건설현장에서 벽돌을 쌓고 있다. 첫 번째 사람은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말을 하며 일을 한다. 배운 것이 없어 이렇게 잡스런 일을 하고 있다고 투덜거린다. 어쩌다가 나는 이렇게 되었는가 라며 신세타령을 한다. 두 번째 사람은 나름 즐겁게 일을 한다. 일을 하므로 가족이 먹고살고 취미와 여가활동도 할 수 있다고 자위한다. 나름 보람을 가지고 산다. 세 번째 사람은 매우 신나고 즐겁게 일을 한다. 그는 생각이 다르다. 어찌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에 쓰임을 받는단 말인가. 이 일이야말로 축복이요 은혜요 기쁨이요 즐거움이다. 그는 날마다 설렘과 감동으로 감격하며 일을 한다. 동일한 임금을 받고 같은 장소에서 일을 하지만 태도와 마음이 그들의 노동의 질을 다르게 할 뿐만 아니라 삶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이다.

신앙적인 가치관과 세계관, 영적인 센스와 태도가 우리 삶의 행복을 좌우한다. 신앙 안에 있는 건강한 사고와 태도가 만드는 행복이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기대한다.

<수원중앙침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