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능선은 산호바다를 꿈꾼다… 상고대로 곱게 단장한 소백산 연화봉의 아침

입력 2014-01-23 01:31


은세계는 새벽에 창조된다. 산세가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워 ‘어머니의 산’으로 불리는 소백산(小白山)도 여느 산처럼 눈이 내리지 않으면 칙칙한 갈색으로 겨울에는 볼품이 없다. 구름 한 점 없어 달빛이 교교하게 쏟아지는 충북 단양의 죽령휴게소에서 첫 번째 봉우리인 제2연화봉(1357m)에 발을 디딜 동안 메마른 나목 가지가 겨울바람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소백산강우레이더관측소가 위치한 제2연화봉에서 소백산천문대를 거쳐 연화봉(1383m)에 이르는 2.3㎞ 구간은 다르다. 등산로는 햇살이 들지 않는 응달이라 겨우내 쌓인 눈이 빙판을 이루고 있다. 이따금 칼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은 골짜기에서 날아온 눈이 수북하게 쌓여 발목까지 푹푹 빠진다. 성긴 나뭇가지 사이로 흘러가는 운무 때문에 앞이 보였다 안보였다를 거듭하는 사이 소백산 새벽은 황홀한 아침을 창조하고 있었다.

동쪽 하늘이 암청색으로 채색될 무렵 나무터널을 벗어나자 꽁꽁 얼어붙은 소백산천문대가 반원형의 돔을 열고 스러져가는 별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있다. 순간 눈앞에 최고봉인 비로봉(1440m)을 비롯해 소백산 봉우리들이 하얗게 얼어붙은 채 순백의 세상을 펼쳐 보인다. 습기 머금은 운무가 철쭉을 비롯한 나목 가지에 얼어붙어 상고대로 불리는 서리꽃을 활짝 피운 것이다.

소백산천문대 옆에 위치한 연화봉은 철쭉 군락지로 유명한 곳으로 제1연화봉(1394m), 비로봉, 국망봉(1421m) 등 소백산 봉우리 중 상고대가 가장 아름답다. 전망대 아래로 키 작은 철쭉 군락이 광활하게 펼쳐지고 동서남북 어느 한곳도 막힘이 없는 열린 공간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소백산 능선은 충북 단양군과 경북 영주시의 경계로 백두대간 종주길이다. 북서쪽으로 월악산을 비롯해 금수산 봉우리가 운해 속에서 섬처럼 솟아있고, 남동쪽으로는 영주의 고봉들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백두대간 능선이 지나는 북동쪽 산줄기를 따라 눈을 돌리면 2.5㎞ 떨어진 비로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해는 벌써 떴지만 운무 속에 갇혀 사위는 물을 흠뻑 먹은 수채화처럼 희미하다. 그 순간에도 단양 골골에서 피어오른 운무는 시시각각 골짜기를 타고 올라와 백두대간 능선을 넘는다. 제1연화봉과 비로봉이 운무 속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운무가 한차례 휩쓸고 갈 때마다 나목 가지에 얼어붙은 상고대가 점점 두터워지면서 순백으로 변한다.

바람과 운무가 조화를 부리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눈꽃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얼어붙은 철쭉 가지 사이로 해인지 달인지 구분 못할 정도로 빛을 잃은 천체 하나가 허리 높이에서 불쑥 나타난다. 마지막 운무가 제2연화봉 아래 골짜기를 타고 내려가자 태양이 거침없이 붉은 빛을 쏟아낸다.

상고대로 단장한 철쭉 가지가 오렌지색으로 물들고 소백산천문대와 소백산강우레이더관측소도 오렌지색으로 채색된다. 그리고 멀리 운해 위로 금수산과 월악산의 봉우리들이 섬처럼 우뚝 우뚝 솟아 선경을 연출한다. 남태평양 해저를 수놓은 하얀 산호처럼 순백의 상고대가 소백산의 아침을 완성하는 순간이다.

단양=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