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박은애] 책임은 사퇴로만 지는 게 아니다

입력 2014-01-22 03:40


사퇴는 사태 수습보다 신속했다. 20일 오전 기자회견 때만 해도 사태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던 카드사 대표들이 4시간 새 줄지어 사퇴했다. 오후 5시 NH농협카드 손경익 사장을 시작으로 KB국민카드 심재오 사장과 임원진 그리고 KB금융지주·KB국민은행의 임원들이 사표를 제출했다. 9시를 넘어서자 롯데카드 박상훈 사장과 임원들도 사의를 표했다.

고객들 태도는 싸늘하다. 분노가 가라앉기는커녕 “사퇴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느냐”는 냉소적인 반응이 지배적이다. 카드 해지와 재발급을 위해 은행을 찾은 고객들은 “10년 넘게 믿고 거래했는데 이젠 못 믿겠다”며 분노했다.

금융권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금융 당국과 카드사의 말이 먹힐 리 없다. 2차 피해 가능성이 없고, 비밀번호와 CVC가 유출되지 않아 재발급 받지 않아도 안전하다는 안내를 하지만 고객들의 재발급 행렬은 이어지고 있다. 21일 오후 6시까지 접수된 재발급·해지 요청만 175만건에 달했다.

오히려 직원들 안내에 분통을 터뜨리는 고객도 있었다. A씨는 “아무리 ‘개인정보는 공공재’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지만 주민번호와 휴대전화번호 등이 다 유출됐는데 걱정하지 말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게다가 콜센터는 하루 종일 불통이고 홈페이지 접속도 원활하지 않았다. 영업점이나 백화점도 마찬가지였다. 직원은 번호표를 뽑기도 전에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건넸다. 유일하게 내놓은 결제내역 문자서비스 무료 제공마저 시행 시기나 방식 등이 정해지지 않았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21일 “책임질 일이 있으면 지겠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조했지만 동양 사태에 이어 대규모 카드고객 정보유출 사건이 터질 때까지 사후약방문식 대책만 내놨던 당국의 수장으로서 당연한 발언이다. 다만 모두들 책임은 사퇴로만 지는 게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박은애 경제부 기자 limitle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