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설 목사의 시편] 한국인의 심성으로 본 나눔과 섬김

입력 2014-01-22 01:37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평화(平和)를 한자로 풀이하면 ‘먹을 것을 골고루 나누어 먹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우리는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이해관계와 욕심 때문에 나누지 못한다. 사실 경제적 가치를 따지면 나눌 것이 하나도 없다. 아프리카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많아도 경제적 문제 때문에 남은 농산물을 태평양에 버린 나라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세계는 지금 어느 나라든지 경제논리에 심하게 길들어 있다.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나 유용성으로 평가하는 현실이다 보니 때로는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도 나눔과 섬김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고 인생의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물론 아직 서구사회의 발전된 시민의식이나 자원봉사활동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말이다.

한국인에게는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관계성으로 이해해야 하는 ‘정(情)’의 문화가 있다. 정의 문화는 우리의 관계를 묶는 하나의 힘이다. 반세기 이상을 한국인으로 살아온 프랑스 출신의 렌 뒤퐁 주교는 “한국인의 인정(人情)은 세계에 수출할 만한 심리 상품”이라며 정의 문화를 극찬했다. 싫어도 버릴 수 없고, 나빠도 나쁘다 말하지 못하며 도리를 감당하는 것이 정이다. 나는 정의 문화를 계승해온 한국인의 심성이 상대방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납하는데 큰 장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정의 문화가 있어 가족과 이웃에 대한 책임감을 잃지 않게 된다.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말이 있듯 정의 관계 속에서 사람의 도리를 다하게 된다. 정의 심리는 아픔과 고통이 있어도 외면하기보다는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게 한다. 한국인만 가지고 있는 정의 심리는 이웃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내가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절제해서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내가 정한 기간 동안 굶어서 기도가 응답하는 것이 아니다. 먹을 양식을 절제함으로 고통과 희생이 있는 나눔과 섬김이 있어야 기도가 응답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이사야가 본 참된 금식의 의미와 가치다.

주옥같은 글로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희망이 되었던 동화작가 권정생은 “내가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덜 소유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 나누고 섬기는 사람은 소유욕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가 염원하는 평화는 나누고 섬기는 일이 많을 때 얻을 수 있는 열매요 선물이다. 나눔과 섬김은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남과 북을 비롯해 지역과 지역, 세대와 세대 등 어느 곳에나 있어야 할 삶의 원리다. 나눔과 섬김은 어두운 곳을 빛으로 바꾸어가는 힘이요 지혜다. 그래야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기대고, 밟고 올라서서 더 높은 곳,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다. 한국인의 심성인 정의 문화로 돌무화과 나무라는 디딤돌을 만들어나가 더 많은 삭개오를 품어내기를 열망해본다.

<여주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