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안동현] 2014년초부터 웬 금리인하 타령?

입력 2014-01-22 01:37


연초 외국계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의 리서치 리포트 한 장이 한국은행과 채권시장 주변을 술렁이게 했다.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를 사흘 앞둔 지난 6일 배포된 보고서로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2.5%에서 2.25%로 25bp(1bp=0.01% 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채권금리가 5bp 이상 하락하고 환율은 무려 10원이나 급등하는 등 시장에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물론 사흘 뒤 열린 금통위에서는 금리 동결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골드만삭스의 금리인하 논리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엔저로 인한 원화 강세로 우리나라의 수출과 투자 회복 모멘텀이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다. 둘째, 물가상승률이 낮은 수준이며 정부가 재정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지난해보다 긴축적인 예산안을 편성했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을 통해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논리다.

사실 이 같은 내용은 새로울 것도 없다. 재작년 12월 아베노믹스 출범 이래 엔저가 시작됐을 때부터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 금리인하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특히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인 작년 4월 정부의 금리인하 압박 요구가 거세지면서 한 달 후 한국은행이 결국 금리인하를 단행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금통위 하루 전인 지난 8일 여당의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한 의원이 “미국과 일본이 제로금리를 유지하며 양적완화를 취하고 있는 상태니 우리도 기준금리를 획기적으로 낮출 필요성이 있다”고 한국은행을 압박했다. 이런 모든 금리인하 논리는 골드만삭스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엔저가 바로 요격 대상이다.

그런데 새로운 내용도 없는 일개 IB의 보고서가 그렇게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보고서에서 만약 금리가 동결되더라도 만장일치 가능성은 작고 금통위 통화정책은 비둘기파 쪽으로 변경될 것이라는 언급 때문이었다. 시장에서는 골드만삭스가 금통위 위원 누군가로부터 언질을 받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기준금리 인하 전망이 힘을 얻었다. 보고서 내용보다 그 배후에 ‘뭔가 있지 않겠나?’라는 음모론적 발상에 근거해 시장이 반응했던 것이다.

다시 금리인하 주장의 당위성에 대해 논해 보자. 엔저가 우리 수출산업, 특히 자동차나 IT 등 주요 산업에 악재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 산업에는 삼성이나 현대 등 글로벌 마켓에서도 선두권에 속하는 기업들이 진을 치고 있다. 어느 정도 타격은 입겠지만 기업들 스스로 이런 악재를 견뎌낼 정도로 성장했고 더 이상 정부나 한국은행이 나서서 이들에게 ‘방패(shield)’를 쳐줄 대상이 아니다. 재정 긴축에 따른 유동성 보완도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현재 경기는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무엇보다 현재 우리 경제에 유동성은 과잉이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단기 부동자금만도 700조원에 육박한다. 은행의 자본 조달금리 지수인 코픽스는 2.6%로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금리인하를 통한 부양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유동성 함정에 이미 빠져 있다.

지금 중요한 건 오히려 내수 부문이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웃돈다. 내수 부진은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인한 가계대출 문제가 그 핵심에 있다. 인위적인 부양책이라면 금리인하가 아니라 차라리 부동산 가격을 부양하는 것이 특효약일 것이다. 물론 그럴 수는 없는 것처럼 금리인하는 현재 우리 경제가 맞고 있는 디레버리징의 갈림길에서 장기 처방을 버리고 대증적인 처방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현재 1000조원 규모의 가계대출이 금리인하로 인해 더 증가한다면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성장은 글로벌 회복의 물결에 맡기고 가계대출과 한계기업 정리 등 구조조정에 힘을 써 하반기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이후 금리 상승기에 대비하는 일이다. 이러한 시점에 갑자기 웬 뜬금없는 금리인하인가. 이 와중에 마침 골드만삭스는 작년 미국의 테이퍼링 예측에 실패해 채권 부문 매출이 15%나 급감했다고 발표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