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미국 연준 의장 선정의 교훈

입력 2014-01-22 01:38


떠날 때 갈채 받는 공직자는 행복하다. 8년 임기를 마치고 이달 말 퇴임하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요즘 편안해 보인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브루킹스연구소 강연회에서 그는 ‘활짝 웃음’도 자주 지었다. 지난 3일 세계 경제학계 최대 행사의 하나인 미국경제학회(AEA) 연례 총회에서는 수백명의 경제학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진앙이었던 미국 경제를 성공적으로 회복시킨 데 대한 ‘인정’의 표시였다.

최근 미국 경제의 건실한 회복에 버냉키 의장의 지도력과 전문성이 결정적 기여를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주목받는 것은 창의적인 위기 해법이다. 금리가 제로 수준으로 떨어져 중앙은행의 정책수단이 바닥났다는 위기감이 엄습했을 때 시장에 유동성을 직접 공급하는 양적완화(QE) 등의 공격적인 방안을 실행했다. 미 정치권의 이전투구로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을 쓸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미국 경제 구원’은 더욱 극적이다. 그래서 1920년대 대공황 연구의 최고 권위자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발발 시점에 연준 의장이었던 것은 미국의 축복이라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부럽게도 이런 미국의 ‘축복’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재닛 옐런 차기 의장도 버냉키 못지않은 ‘내공’을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학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탄탄한 성장세를 고용 회복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향후 미국 경제의 최대 과제인 시점에서 실업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옐런이 바통을 이어받는 것은 절묘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렇다고 금융시장이나 통화정책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 임원의 최우선 자격 중 하나인 경제예측력에서 옐런이 최고라고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이처럼 아귀가 척척 맞아떨어지는 인사는 우연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당초 염두에 둔 인물은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초부터 이에 대한 반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9월에는 저명한 경제학자 350여명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차기 의장으로 옐런을 추천하는 서한을 보냈다.

‘서머스 불가’ 이유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서머스 전 장관이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최대 원인으로 지적되는 금융규제 완화를 강력히 주장한 인물이며, 경제예측에도 여러 차례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의 반대가 정치적 견해차이나 개인적 감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기고문을 조금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대통령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도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핵심은 누구 지지·반대가 아니라 최고의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춘 연준 의장 선정을 위해 철저한 공론화 과정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백악관이 전문가 집단과 여론의 검증을 염두에 두고 후보를 사전에 흘리는 ‘용기’도 한몫했다.

차기 한국은행 총재 임명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미 연준 의장 지명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이 미국보다 한국 경제의 어둠은 더 짙고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청와대는 막판에 ‘점지’하는 구습을 타파해야 하고, 학계와 정치권은 적격 후보에 대한 토론을 이제라도 본격화해야 한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