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강은교] 칼치
입력 2014-01-22 01:38
오랜만에 구운 칼치의 잔뼈를 발랐다. 혹시라도 잔뼈 가시를 놓쳐 낭패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돋보기를 꺼내 썼다. 언젠가 생선 가시에 혼난 일이 있어 조심을 하려다 보니 돋보기까지 꺼내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돋보기를 꺼내 쓰고 보니 조그맣다고 생각했던 칼치토막이 순간 훌쩍 커 보이면서 구석구석에 감추어져 있던 가시들이며, 못 보던 잔뼈 뒤의 흰 살이며, 광채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광채라니? 누구신가 무척 의아해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다. 하얀 은백색의 우윳빛 도는 광채, 나는 순간 그 은백색의 몸이 바다 밑 산호림 위로 마치 발레하듯 휘어져 지느러미를 펄럭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칼치의 빛깔이 이렇게 아름다우리라곤 미처 생각 못했던 그런 아름다움! 그러고 보니, 칼치 피부에 들어 있는 은백색의 색소는 인조진주의 광택 원료로서 많이 이용된다고 하지 않는가. 칼치의 가늘게 휘어지는 허리는 실은 진주였던 것이다.
그때 춤추는 칼치의 뒤로 어떤 그림자인가가 눈을 뜨고 나를 그윽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어떤 양복 그림자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집안 아저씨 한분이 그 그림자의 주인이었다. 막내동생 결혼식에서 그는 아버지 대신 신부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그 아저씨의 여러 못마땅하던 모습들(약간의 사기성까지)은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결혼식 기념사진 속에서 유영하는 듯 걸어가고 있던 그 아저씨의 ‘근사한, 은백색의 우윳빛 광채’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생각도 못했던 그 아저씨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뒤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 그림자도 진주빛으로 빛나며 따르고 계셨다. 명절 때면 밤새도록 생선전을 부치시던 어머니의 투박한 손. 그런데 그렇게 빛나는 손이었다니….
그렇다. 이 세상엔 생각 못했던 아름다움들이 너무 많다. 생각 못했던 다정함, 생각 못했던 미덕들…. 젊을 땐 비판의 미덕만 중요시여겼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비판을 위한 비판을 지성으로 여긴 듯도 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아, 이 칼치가 나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라고. 이 세상에 아름다운 진주의 광채를, 리듬체조의 리본처럼 둥그렇게 휘어진 허리에 파도를, 바다를 덧입힐 줄 아는 이 칼치 한 마리가.
그것을 찾자. 생각 못한 아름다움, 그런 것에 ‘살아 있는 지금’들을 걸자. 그래서 나의 안경에 빛나는 진주가 어리게 하자. 우리가 진주가 되자.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