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한 조각… 두 조각… 잃어버린 기억 퍼즐 맞추기
입력 2014-01-22 01:37
데이케어센터의 치매 어르신들
“별무리다… 별무리야….”
서울 중구 동호로 신당동데이케어센터(장기요양 어르신 주야간 보호시설)에서 지난 16일 만난 박기순(가명·75) 할머니는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대화 상대 없이 어린아이 옹알이 같은 혼잣말을 이어가는 할머니의 얼굴에도 아이 같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요양보호사는 박 할머니가 ‘웃음형 치매’라고 귀띔했다.
이곳 센터에선 노인성 질환을 앓는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을 돌본다. 주로 노인장기요양 1∼3등급의 노인성 치매 환자들이다.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되는 센터에선 어린이집과 흡사한 일과들이 진행된다.
매일 아침 센터 직원들이 각 가정에서 모셔온 어르신들은 미술·원예 치료와 요리교실 등의 활동에 참가한다. 노래교실과 웃음치료 같은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도 펼쳐진다. 무표정했던 어르신들도 흥겨운 음악에 맞춰 강사의 동작을 따라 하노라면 어느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식사와 잠, 일과활동을 제외한 시간엔 어르신들마다 취향에 맞춰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퍼즐을 맞추거나 뜨개질을 하는 이도 있고, 바구니에 섞여 있는 콩알을 종류대로 나눠 담는 일에 흥미를 붙인 분도 있다. 대부분 치매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손을 많이 움직이는 활동들이다.
센터의 모든 일정에는 요양보호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전문 인력들이 함께한다. 재롱잔치를 선보이는 어린이에서 재능 기부를 하는 자원봉사자까지 지역사회의 도움도 이어진다. 이곳에서만큼은 치매 어르신들도 노년의 여유와 여가를 되찾는다.
노환의 일종으로만 치부되던 치매가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제기되면서 치매는 더 이상 가족들만의 고통일 수 없다는 사회적 역할론이 강조돼 왔다. 최근엔 한 한류스타 가정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밝혀지면서 노인성 치매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더 커졌다. 지방자치단체의 인증을 받은 데이케어센터 등 맞춤형 노인복지 시설이 늘어났고 치매에 대한 인식도 전향적으로 개선됐다. 하지만 사회의 책임을 다하기엔 개선될 부분이 아직 많다.
서울형 데이케어센터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신당동센터의 박창남 센터장은 “법률상으론 어르신 7인당 요양보호사 1명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최소 5인당 1명은 배정돼야 적당하다”며 인력 확충을 강조한다. 그는 “노인장기요양 등급에 들지 않는 조기 경증 치매 어르신들을 돌볼 ‘등급 외 케어센터’도 늘어나야 악화를 막고 예방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치매 같은 중증 노인성 질환이 있더라도 ‘품위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는 환경이야말로 품격 있고 가족 같은 사회공동체의 필요조건이다.
사진·글=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