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 테너 이인범 탄생 100주년] 생전 음반 하나 없이 떠난 담백한 대가
입력 2014-01-22 01:38
이인범이 남긴 음악
“그분은 분명 누구와도 비할 바 없는 아름답고 투명한 음색을 가졌다. 그러나 한 번이나마 자기 현시 없이 인기 있을 때 음반 하나 남기지 못한 우직한 분이었다. 불탄 자리에 새싹 돋듯 이 음반은 그의 믿음과 소원의 싹을 이 땅 위에 새롭게 뿌려주는 매개 작용을 할 것이다.”
음악평론가 유한철(1980년 작고)이 1978년 지구레코드에서 테너 이인범 애창곡집 LP음반을 낼 때 음반 재킷에 쓴 글이다. 이인범은 한 세대 동안 가장 돋보이는 테너로 살았으면서도 음반 하나를 남기지 않은 담백한 사람이었다. 지구레코드 음반은 그의 아내 이정자씨가 피아노반주를 하며 무대 뒤에서 옛날 녹음기로 녹음한 원음을 모아 자비로 발간한 것이다. 그 후 이씨는 LP판에 미처 수록하지 못한 원음을 더 보태 25주년 기념 테너 이인범 애창곡집을 2CD로 발간했다. 물론 이들 음반은 시판용이 아니어서 현재로선 구하기 어렵다.
그러나 남은 노래가 거의 없더라도 그의 음악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크게 메아리를 일으키고 있다. 일반인들이 많이 기억하는 가곡 ‘희망의 나라’는 기백이 솟구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박력 넘치는 성악가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현제명 곡 ‘고향생각’이나 ‘산들바람’은 너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워서 필경 그가 사무치는 고독과 단아함 속에서 평생을 보낸 성악가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독학으로 세계 최고의 음악대학으로 꼽히는 뉴욕 줄리아드 음대 성악부를 수석 합격한 테너 최화진(62)은 “이인범 선생의 음색은 스웨덴 테너 유시 비올링(Jussi Bjorling)과 미국의 리처드 터커(Richard Tucker)를 연상시키지만 그들보다 더욱 아름답다”며 “한국에 이렇게 아름다운 테너가 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 선생이 부르는 롯시니의 오페라 ‘성모애상(Stabat Matar)’ 중 ‘쿠유스 아니맘(Cujus Animam)’을 들어보면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며 “이 노래 마지막 부분의 하이 Db를 그만큼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는 테너는 단연코 세계에서도 몇 명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러는 이인범을 우리가곡의 선구자로 부른다. 더러는 그를 한국 오페라를 개척한 성악가로 꼽는다. 성격이 전혀 다른 한국 가곡과 오페라의 양대 부분을 개척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의 음악의 폭이 넓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임순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