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 장애인 할머니 평생 모은 7억원 기부
입력 2014-01-21 17:09 수정 2014-01-21 20:08
[쿠키 사회] 조금임(95·서울 여의대방로·사진 왼쪽) 할머니는 하반신을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혼자서는 휠체어를 타지도 못한다.
간호전문대 출신인 조 할머니는 31살 때 6·25가 터지자 간호장교로 전장에 나갔다. 그러나 타고 가던 수송차가 뒤집히는 바람에 척추 장애를 입고 하반신을 쓰지 못하게 됐다. 이로 인해 소령으로 진급하며 전역했다.
할머니는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휠체어에 의지한 채 지내왔다. 양말공장에서 일하며 어렵게 생활했다. 국가유공자로 인정돼 나라에서 연금이 나왔지만 평생 돈을 안 쓰고 살아왔다. 먹고 싶은 것도 사먹지 않고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해왔다.
조 할머니가 최근 여산장학회에 1억9500만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500만원 등 총 2억원을 기탁했다. 21일 여산장학회에 따르면 조 할머니는 앞서 네 차례에 걸쳐 5억원을 이 장학회에 기부했다. 평생 어렵게 모은 7억원을 모두 기부한 셈이다.
전북 완주에 있는 여산장학회는 조 할머니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조카사위인 국중하(80·우신산업 대표)씨에게 2000년 2억원을 건네 현재의 여산장학회가 출범하게 했다. 국씨는 현재 여산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조 할머니는 이후 세 차례 1억원씩 기부한 뒤, 이번에 또 2억원을 냈다. 장학회 측은 이번 기부금을 고교생과 대학생들에서 장학금을 지원하고 어린이재단은 빈곤가정 어린이들의 교복 구입비로 쓸 예정이다.
조 할머니는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군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나가사키에서 조산간호전문대를 졸업했다. 이후 해방이 되자 귀국, 국군 창설과 함께 여군이 됐다.
허리부상으로 전역한 후 누워만 있던 조 할머니는 “애국하는 방법이 전선에만 있는 게 아니다”는 생각으로 서울 대방동에 세워진 ‘재활용사촌’에 나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군용양말과 장갑을 만드는 일을 하며 한푼 두푼 모았다.
하반신을 못쓰지만 열심히 운동을 해 장애인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1967년 영국에서 열린 장애인 세계탁구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카퍼레이드도 하고 우승소식이 신문에 보도됐다. 육영수 여사는 자신이 읽던 잡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1972년엔 독일서 개최된 장애인올림픽 양궁부문에서 금메달을 땄다.
조 할머니는 기자의 전화 취재에 “뭐 큰일도 아닌데 이리 알려지는 게 부담스럽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것이 조 할머니의 꿈이라는 것이 여산장학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조 할머니는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 작은 정성이지만 지역의 인재를 키우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중하 이사장은 “조 할머니는 만류하셨지만 아름다운 일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분의 뜻에 따라 인재를 키우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완주=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