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정문서 엄동설한에 매일 1인시위… 경찰도 구청도 속수무책
입력 2014-01-21 02:34
눈이 내린 20일 오전 8시쯤 서울 종로구 사직로의 서울지방경찰청 정문 맞은편 인도. 여성 A씨가 간이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온몸을 감싼 회색 담요 위로 얇게 눈이 쌓였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옆에는 ‘의식을 잃었다’ ‘박○○ 악랄’ 등 쉽게 알아보기 힘든 문구가 적힌 피켓이 놓여 있다. 다가가 말을 걸자 A씨는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서울경찰청의 ‘요주의 대상’이다. 경찰은 ‘마인드컨트롤’이라는 별칭으로 그를 관리하는 별도의 서류철까지 만들어 특이 동향을 체크하고 있다. ‘마인드컨트롤’은 그가 회원으로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 이름이다. 정부가 전파무기로 사람의 정신을 조종한다는 주장을 편다. A씨가 이곳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 건 2012년 3월쯤. 처음엔 서울경찰청 동문에서 시위하다 취객과 시비가 붙은 뒤 경찰관이 24시간 근무하는 정문 앞으로 옮겨 왔다.
경찰관들은 추운 겨울철에도 하루 10시간 이상 자리를 지키는 그를 걱정해 여러 차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번번이 욕설만 듣고 돌아서야 했다. A씨를 설득하려고 김용판 김정석 두 전 청장이 ‘특별 지시’도 내리고 대책 회의도 열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A씨 보호자 주거지까지 수소문해 집으로 돌려보내도록 설득해 봤지만 “경찰이 할 일도 없느냐”는 면박만 들었다.
종로구청도 속수무책이긴 마찬가지다. 구청 관계자는 “여러 차례 A씨를 찾아가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설득했지만 본인이 원치 않아 어쩔 도리가 없다”며 “매번 계도만 할 뿐 인권 때문에 강제로 조치를 취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구청은 날씨가 쌀쌀해진 지난 15일에도 A씨를 찾아가 집으로 돌려보냈으나 이튿날 오전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나타났다.
이처럼 경찰·구청과 노숙인, 1인 시위자들의 ‘숨바꼭질’은 겨울에 더욱 극심해진다. 어떻게든 돌아가지 않으려는 이들과 어떻게든 객사(客死) 등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는 공무원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이어진다. 지난해 초에는 치매 증상을 보이는 할머니가 청와대 앞에서 수개월간 1인 시위를 해 경찰관과 공무원이 진땀을 뺐다.
글·사진=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