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회-추운 세상 녹이는 훈훈한 기부] 후배들에 천금 같은 장학금

입력 2014-01-21 01:33

“뜨거운 가슴으로 못나고 부족한 대상을 껴안는 사람이 됐으면 해요.”

80대 할머니가 근검절약해 마련한 전 재산 1억원을 모교에 쾌척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보다는 됨됨이를 보고 장학금 혜택을 주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후배들에게 “멋지고 훌륭한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쉽다. 못나고 부족한 대상을 껴안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고려대 간호학과 48학번인 박희정(83) 할머니. 학창시절 수재로 이름났던 그는 경기여고와 고려대를 거쳐 국선 장학생으로 뉴질랜드와 영국에서 유학했다. 귀국해 고려대병원 간호부장과 의대 외래교수 등을 역임했다. 그는 “그때만 해도 간호 쪽은 선배가 없었어요. 가난하고 외로웠지만 정말 열심히 했죠. 이젠 후배들에게 든든한 선배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1억원은 고려대 간호학과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박 할머니는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많이 했어야 했는데…. 이제야 후배들을 챙기게 돼서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도 “간호학의 기본은 인간이다. 공부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 할머니의 기부는 처음이 아니다. 2012년 11월에도 2억원을 기부했다. 남편은 2011년 작고한 고(故) 류근철 박사. 국내 1호 한의학 박사이면서 카이스트에서 초빙특훈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던 류 박사는 노벨과학상 배출을 염원하며 2008년 578억원이란 거액을 카이스트에 내놨다. 개인 기부액으로는 국내 최고다. 당시 고인이 박 할머니와 함께 내놓은 장학금은 거의 전 재산이었다. 박 할머니는 ‘부창부수’ 격으로 근검절약하며 그 뜻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박 할머니는 기부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여생으로 주어지는 한 해 한 해를 선물로 여기면서 생일이 낀 11월마다 추가 기부를 하고 싶다. 후배들에게 청춘의 꿈이 얼마나 아름다운 건지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