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라 트리폴리 무역관장 피랍] 누가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입력 2014-01-21 02:33
차량 가로막고 공포탄 쏘며 순식간 납치
운전자 놔두고 한국인 겨냥… 계획된 범죄
한석우(39) 코트라 트리폴리 무역관장 피랍 사건은 현지 무장세력에 의해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범죄로 보인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면 납치범들이 한 관장만 특정해 납치를 시도했다는 추론이 설득력을 얻는다. 특히 무장세력이 한국 외교관 번호판이 달린 승용차를 보고 한 관장을 노렸다면 정치 또는 종교적 목적으로 범행이 이뤄졌다는 의미여서 사태가 자칫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 세운 듯=한 관장은 19일 오후 5시30분(한국시간 20일 0시30분)쯤 업무를 마친 뒤 평소처럼 퇴근길에 올랐다. 중동지역은 금·토요일이 휴일로, 사건 발생일인 일요일은 근무일이었다. 한 관장을 태운 승용차가 트리폴리 시내 도로를 지나가던 중 갑자기 차량 1대가 한 관장 차를 가로막았다. 직후에 소총 등 개인화기로 무장한 괴한 4명이 차량에서 내려 한 관장과 이라크인 운전기사를 위협한 뒤 한 관장을 자신들의 차에 태웠다. 괴한들은 이 과정에서 공포탄도 쏜 것으로 알려졌다. 무장괴한들의 차량은 곧바로 시내 서쪽으로 사라졌다. 납치극이 이처럼 순식간에 끝난 것은 무장괴한들이 오래 전부터 한 관장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차량에 남겨졌던 이라크인 운전사는 범행 10분 후 인근 리비아 주재 한국대사관에 피랍 사실을 알렸다. 운전기사는 무역관 측에도 “괴한 여러 명이 우리를 공격했고 ‘미스터 한’을 데리고 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외교관 표적인가, 금품 노린 소행인가=괴한들이 단순 강도인지, 현지 무장세력인지, 아니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인 알카에다인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한 관장을 납치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단체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석방 대가로 거액의 금품을 요구하려는 특정 무장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지만, 한국 외교관을 겨냥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교관을 노렸다면 한국 정부에 불만이 있는 이슬람 과격세력이 모종의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범행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치안이 불안한 국가의 코트라 무역관은 한국대사관 부속기관 지위가 부여돼 관장 차량에 외교관 번호판이 부착된다. 한 관장도 관례에 따라 외교관 번호판을 단 차량을 이용해 왔다. 정부 당국자는 “대부분의 납치 사건은 금품이나 종교적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며 “납치 배경과 어떤 단체인지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알카에다와의 연계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한국 기업 주재원 등 타깃 범죄 횡행=리비아에선 지난해만 우리 기업 주재원, 교민을 총기로 위협하고 차량을 빼앗은 무장강도 사건이 10여 차례 발생했다. 무역관이 18층에 입주한 트리폴리타워는 시내 번화가에 지어진 현대식 빌딩이다. 트리폴리타워에는 영국대사관, 브리티시에어웨이, 에어몰타 등 외국 공관과 외국계 기업이 다수 입주해 있다. 무장세력이 금품을 노린 경우라면 이 빌딩에서 근무하는 외국인을 타깃으로 삼았을 개연성이 많다. 특히 이 빌딩은 지난해 12월 현지 민병대와 빌딩관리 업체 간 갈등을 빚으면서 민병대의 무력 점거로 4일간 폐쇄된 적도 있다. 현지 코트라 무역관에는 본부에서 한 관장 한 명만 파견됐고, 나머지 6명은 현지에서 고용된 직원이다.
남혁상 권기석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