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정병석] 규제개혁, 발상의 전환
입력 2014-01-21 01:37
“부처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직 공무원보다 전직 고위공무원 활용토록”
네덜란드 프로축구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은 선수가 충격으로 운동장에 쓰러져 기절하는 사태가 지난해 발생했다. 심판의 판정은 절대적이므로 레드카드를 받으면 바로 퇴장당하고 선수가 1명 줄어든 팀은 큰 곤경에 처한다. 경기 시작 11분 만에 레드카드를 받게 되자 그 선수는 얼마나 부담감을 느꼈는지 기절까지 하게 된 것이다.
축구의 역사는 오래되지만 레드카드는 1970년 월드컵에서부터 사용됐다고 한다. 원래 심판은 경기장 밖에서 경기 흐름을 주시했는데, 갈수록 경기가 격렬해지고 반칙이 늘게 되자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 선수들을 쫓아다니며 감시하도록 바뀌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어떤 의욕적인 심판이 행위의 결과를 보고 반칙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않고 어떤 동작을 취하려는 선수를 향해 ‘그렇게 하면 안돼’하며 미리 엘로카드나 레드카드를 제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심판은 경기의 질서를 유지하는 책임이 있지만 그렇다고 경기 흐름에 직접 개입하면 물 흐르듯 매끄러운 패스와 수비를 망치고 환상적인 드리블이나 골인 장면을 볼 수 없게 되지 않을까.
경제관련 법제도는 경제활동을 하는 기업이나 개인을 규율하는 게임의 규칙이다. 규칙이 너무 복잡하면 게임의 흐름을 저해할 뿐더러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고 이행하기도 어려워진다. 간단하면서도 분명해야 하고 일단 만들어진 규칙은 엄정하게 집행이 돼야 경제주체들이 이를 신뢰하며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도 너무나 많은 법제도가 있어 이를 잘 알기도 어렵고 지키기도 어려운데 국회에서는 경제활동을 직접 규율하는 법을 양산하고 있다. 창업이나 사업 확장을 하려 해도 곳곳에서 발목을 잡혀 경제성장이 저해된다는 지적도 많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의 경제원리인 질서자유주의를 확립한 발터 오이켄은 정부는 경제의 기본질서만 정립해야지 경제과정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공정한 게임의 질서를 확립·유지하는 것이므로 대법원 정도의 권한을 갖고 독립적인 공정거래기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공정거래기구가 배타적인 권한을 갖고 경쟁질서를 확립하도록 역할을 정립하는 것보다 경제활동을 치밀하게 규율하는 규칙을 더 만들어야 질서가 확립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연두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신설해 대통령이 직접 규제개혁을 챙기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역대 대통령들은 규제완화를 공약하고도 막상 임기 중 규제가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규제의 정도가 임기 초에 비해 40%나 강해졌다고 한다. 언젠가 정부의 규제위원회에 새로 참여하는 교수에게 조언한 적이 있다. 부처의 공무원들과 규제 문제를 협의할 때는 반드시 국장 이상 공무원과 협의하라는 것이었다. 규제위원회의 권위 때문이 아니고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정부 부처의 국이나 과 단위는 특정한 법제도의 시행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많다. 그런 공무원들에게 자기의 소속 국이나 과의 존폐가 달린 규제를 폐지하라는 것은 애초에 무리한 것이다. 그러니 규제개혁은 조직 단위를 뛰어넘는 고위공직자들과 논의해야만 하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규제 문제는 제로베이스에서 새롭게 검토하는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나라를 새로 만들어 경제제도를 편성한다면 어떤 내용의 제도를 만들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검토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현행 규제를 놓고 개폐의 필요성을 논하는 미봉책에서 벗어나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속 부처의 현실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직 공무원보다는 현직을 떠난 고위공무원들을 활용할 것을 제안해 본다. 현직을 떠난 지금은 국민경제의 활력을 회복한다는 큰 목표를 위해 보다 객관적인 게임의 규칙을 정립하는 개혁안을 과감하게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정병석 한양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