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 ‘미다스의 손’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 “꼰대 소리 들을까 일주일에 영화 한 편 꼭 봐”
입력 2014-01-21 01:36
충무아트홀 이종덕(79) 사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 중구 흥인동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서랍에서 명함을 꺼내는 그의 두툼한 손 옆으로 ‘1. 따지지 않는다’고 적힌 명함 크기의 카드가 보였다. “낭만파 클럽 회원들에게 나눠주던 건데, 내 지금껏 살아가는 신조랄까 그런 거요.” 2001년 광화문을 문화예술의 본산으로 만들겠다고 만든 ‘낭만파 클럽’ 회원들과 나누기 시작한 20가지 원칙이 적혀있는 카드다. ‘2. 차라리 내가 손해 본다’ ‘3.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나눈다’ ‘6. 문화, 예술, 스포츠를 사랑한다’ ‘7. 멋도 부릴 줄 안다’ 등이 카드에 적혀 있었다.
한국 공연계의 산증인, 문화예술계의 마당발, 예술경영 CEO 1세대 등의 타이틀이 붙는 그의 첫 신조가 ‘따지지 않는다’니 의외다. 1995년 예술의전당 사장을 시작으로 세종문화회관, 성남아트센터, 충무아트홀까지, 정권이 바뀌어도 중요한 자리를 지켰던 그가 아니던가. 이것저것 잘 따지고 가려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을 법한데. “따지기 시작하면 얼마나 피곤해. 그냥 내가 손해를 보고 사는 게 낫지.” 그 대답이 그의 삶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는 1963년 문화공보부 예술과 공무원으로 공연계와 연을 맺은 뒤 50년째 공연계를 지키고 있다. “정부의 매니저라고 할까,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아. 낮에는 공무원으로, 밤에는 문화예술인과 어울리면서 밤낮 정신없이 살았지요.” 특유의 친화력과 추진력으로 남들이 감히 생각지도 못하던 일들을 일궈냈다. 정명훈 현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1973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으로 귀국했을 때 카퍼레이드를 기획한 것도,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자신이 발굴한 ‘코리아나’를 통해 ‘손에 손잡고’를 전 세계에 알린 것도, 2002년 독일에서 대성공을 거둔 발레리나 강수진의 화려한 국내 무대를 성사시킨 것도 그였다.
그가 가는 곳마다 마법처럼 공연장이 제자리를 찾고 이름값을 해내면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폭넓은 인맥은 문화예술계 ‘이종덕 사단’을 낳았다. 안호상 국립극장장, 김승업 부산 영화의전당 대표, 김의준 국립오페라단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가 삶의 여정을 정리한 책, ‘공연의 탄생’(도서출판 숲)을 발간했다는 소식에 선후배, 동료들이 앞다퉈 출판기념회에 오겠다고 했을 정도다.
정작 그는 “외롭고 고독했다”고 회고했다. 파업 중이던 예술의전당 노조원들을 혼자 찾아가 “나를 믿고 파업을 접어 달라”며 즉석에서 찬반 신임 투표를 제안했을 때도, ‘성남아트센터’라는 이름을 반대하던 시의원들을 주민설문조사를 토대로 설득하고 명실상부한 지역 문화센터로 키워냈을 때도, 그는 혼자 싸워야했다.
그렇게 반세기가 흘렀고, 팔순을 앞둔 그는 지금도 현장에 서 있다. 공연계만큼 젊은 감각이 필요한 곳이 또 있을까. 더구나 40∼50대 CEO들도 요즘 젊은 애들과는 일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세상이다. 어떻게 그는 이런 세태에서 비켜설 수 있었을까.
“내가 A형인데 상당히 예민해요. 겉으론 이래도 속으로는 늘 전쟁을 하고 있지. 꼰대 소리 안 들으려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도 보고 뮤지컬도 봐요. 의무적으로 보기도 하고 좋아서도 보지. 리더는 사실 현장에서 분위기 잡아주는 게 제일 중요해요.”
나이에 비해 젊게 사는 비결을 물었다. “끼가 제일 중요해요. 그리고 여자를 여자로 보는 것. 하하. 목석으로 보면 매력 없고 살맛도 안나요. 남자든 여자든 누군가를 만났을 때 잘 생겼든, 교양이 있든, 심성이 곱든, 잘 베풀든, 어떻게 해서든 상대편에게 또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할 정도가 돼야죠. 사실 와이프가 여배우들 만나는 건 별로 안 좋아했어. 하하. 그래도 일요일마다 성당 다녀와서 와이프랑 영화보고 저녁 먹는 게 제일 편안한 시간이고 삶의 낙이요.”
그와 비슷한 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공연 기획을 하려면 우선 많이 알아야 해요. 공연 기획뿐만 아니라 문화계 저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누구를 만나더라도 대화가 끊어지지 않을 수 있어요. 또 실수하더라도 커버해줄 수 있는 인맥을 많이 갖춰야 합니다.”
그는 올해 충무아트홀을 새로운 뮤지컬 메카로 만들기 위해 여러 기획을 준비 중이다. 당장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3월 무대에 올린다. “내 인생은 무대 인생이었고, 무대 인생은 내 인생무대였어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는 좀처럼 오지 않지만 나는 그가 올 것을 믿습니다.” 그의 책 마지막 문장처럼, 사람들은 아직도 그의 다음 무대를 기다리고 있다.
이종덕 사장은
1935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45년 해방 이후 한국으로 건너왔다. 경복중·고교,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 세워진 국가재건최고회의 제1기 공무원 시험을 통해 공직에 진출했다. 63년 문화공보부에서 예술행정과 인연을 쌓은 뒤 20년간 관련 업무를 도맡았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상임이사, 88서울예술단장, 서울예술단 이사장을 지냈다. 예술의전당(1995∼98) 사장을 시작으로 예술경영 CEO 1세대의 문을 열었다. 이후 세종문화회관(1999∼2002), 성남아트센터(2004∼10) 사장을 거쳐 현재 충무아트홀 사장으로 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