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남북경색 스포츠로 풀어야
입력 2014-01-21 01:37
마상무예 활용한 조선 외교
인조 14년인 1636년 파견된 조선통신사에는 장효인과 김정이라는 특별한 재인(才人)이 함께한다. 도쿠가와 막부가 마상무예에 능한 인물을 사절단에 포함시켜 줄 것을 간청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조선과 달리 ‘달리는 말 위에 서고, 말의 좌우를 옮겨다니며, 심지어 물구나무를 서는’ 마상재(馬上才)가 애초에 없었다. 마상재를 처음 구경한 일본인들은 충격 그 자체였고, 이후 사절단에 반드시 마상재에 뛰어난 인물이 동행하게 됐다. 마상재는 일본인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원조 한류’였던 셈이다.
마상재를 굳이 오늘날 문화적 카테고리로 구분짓자면 스포츠 영역에 속한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 양국의 선린외교를 위해 파견된 조선통신사에 스포츠가 등장한 것이다.
스포츠는 상호교류의 가교
국제정치에서 스포츠는 다양한 형태로 활용된다. 흔히들 외교적 도구나 국위 선양의 방편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냉전시대에는 이데올로기 선전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또 1970년대 미국과 중국 간에 펼쳐진 핑퐁외교처럼 적대국 간의 상호교류와 신뢰를 증진시키는 가교역할을 하기도 했다. 마치 조선통신사의 마상재가 했던 것처럼 스포츠는 국제이해와 상호교류를 촉진하는 수단이 된다.
그 어느 때보다 경직된 현 동북아 정세를 푸는 데 스포츠가 본연의 역할을 해낼 때가 왔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미국의 데니스 로드맨이나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 의원이 스포츠맨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드맨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좋아했던 미국프로농구(NBA) 스타선수 출신이지만 단순히 농구경기만 하기 위해 방북했을 리 없다. 미국 정부도 겉으로는 그를 비난하지만 그가 방북함으로써 북·미 간의 비공식 대화창구가 작동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노키 의원은 일본을 대표하는 프로레슬러이지만 체육교류 명분으로 북한을 28차례나 방문했다. 지난 1995년에는 평양에서 경기를 했고, 이번 방북 때 평양 경기를 또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체육교류가 표면적인 그의 방북 목적이지만 일본의 참의원으로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대화의 징검다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 역시 스포츠를 통한 자국의 이익과 교류증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남북 간에도 화해와 교류증진을 위해 정치·경제분야는 물론 문화·예술분야에서도 다양한 접촉이 있어 왔다. 특히 체육분야의 교류는 다른 분야 못지않게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 개막식 동시 입장,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단일팀 구성 등은 남북 체육교류사업이 낳은 빛나는 결과물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최근 경직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스포츠계가 발 벗고 나서길 권하고 싶다. 정부당국 간 대화제의에도 아무런 성과물이 없는 현 남북대치상황에 스포츠만한 돌파구가 없다. 북한선수가 출전하지 않아 소치 동계올림픽과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화는 힘들겠지만 오는 9월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한선수단이 출전할 수 있도록 스포츠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또 한국 주도의 세계태권도연맹(WTF)과 북한 주도의 국제태권도연맹(ITF)으로 나뉘어 있는 태권도도 훌륭한 남북 교류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게다가 국회에는 스포츠스타 출신이 2명이나 있다.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역인 이에리사 의원과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인 문대성 의원을 로드맨이나 이노키 의원처럼 남북교류의 마중물로 활용하는 것이다.
서완석 체육부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