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우 목사의 시편] 하나님의 책임, 사람의 책임
입력 2014-01-21 01:36
봄철이 되면 교회마다 대심방을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교회 규모가 커지면서 대심방을 교구 목사들에게 위임해야 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좋은 대안으로 고안해 낸 것이 ‘기도심방’이었다. 송구영신예배를 마치고 새해 첫날 성도들의 신년 기도제목을 들고 기도원에 간다. 하루에 열 번씩 ‘중보기도심방’을 한다. 사흘 정도 기도하고 나면 성도들의 기도제목이 거의 다 외워진다.
기도하는 중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첫째, 성도들이 적어 낸 기도제목을 1년 후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둘째, 추상적인 기도제목이 대부분인데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셋째, 기도제목의 수준이 지나치게 개인적인데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위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해보았다. 첫째,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 기도제목을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수도 있다. 하지만 응답 받았는지 정작 당사자는 알 수 없다.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적어 낸 기도제목은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잉크가 오래 간다. 둘째, 기도제목의 구체화이다. ‘가족건강’을 추상적으로 구하지 않고 ‘혈당 수치 -50㎎’ ‘혈압 80∼120㎜Hg’ ‘콜레스테롤 200㎎/㎗ 이하’ 등으로 수치화하는 것이다. 셋째, 기도의 수준과 범위를 매년 넓혀가는 것이다. 개인을 넘어 교회, 교회를 넘어 민족과 세계선교를 위해 우리의 기도가 확장되어야 한다.
한 초등학교 2학년생 기도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시험 올 백. 둘째, 아빠 사업 잘 되어서 용돈 많이 받게. 셋째,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 귀여운 얼굴이 떠올라서 한참 웃었다. 귀여운 사람의 귀여움은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한다. 귀여워서는 안 될 사람의 귀여움은 징그럽다. 우리의 기도가 초등학생 수준의 귀여움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응답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만 기억하고 구체화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1년 전 기도원에 가려고 집을 나설 때 딸이 세 가지 기도제목을 내 놓았다. 구체적인 기도제목 중 첫 번째 것은 ‘몸무게 49㎏’이었다. 딸은 아직도 응답받지 못했다. 성도의 기도제목을 들고 금식기도 하러 집을 나서는 순간 집에 치킨이 배달되었다. 치킨의 향기가 기도원까지 따라왔다. 딸도 성도의 한 사람이었는데, 딸을 위해선 간절한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자기는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목사이자 아버지는 딸의 체중 감량을 위해 기도한다면 하나님도 난감해하실 것이다. ‘금식해야 할 사람은 먹고 먹어야 할 사람은 금식한다.’ 이건 아니어도 한참 아니라 생각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자신의 책임과 순종을 드려야만 한다. 사람이 사람의 책임을 다할 때 하나님이 하나님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실 리 없다.
<일산 로고스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