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변호사 1만명 시대] 의뢰인 푼돈 모아 박리다매식 진행… 살아남기 몸부림

입력 2014-01-20 02:32

서울에서 개업한 변호사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화려한 사무실에 앉아 사무장들이 갖다주는 사건만 처리해도 고액의 성공보수금을 챙길 수 있었던 시절은 지났다. 젊은 서울 변호사들은 저마다 새로운 길을 개척 중이다.

최근 약학정보원의 정보유출 사태와 관련해 의사와 환자 등 의료정보 유출 피해자들은 집단기획소송을 준비 중이다. 피해자들은 착수금 및 소송비용으로 6만원(의사 피해자), 3만원(일반 피해자) 정도를 내면 된다. 현재 소송참여 의사를 밝힌 의뢰인만 400여명에 달한다.

이처럼 의뢰인의 ‘푼돈’을 모아 ‘박리다매’ 식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기획집단 소송이 늘고 있다. 최근 기획집단 소송은 주로 온라인상에서 소송 참가자 모집이 이뤄지고 있다. 네이버에만 200개가 넘는 관련 카페들이 개설돼 운영 중이다. 해킹으로 87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KT 정보유출 사건 관련 소송이 대표적이다. 또 은행 근저당권 설정비 반환 소송과 국공립대 기성회비 반환 소송 등도 기획집단 소송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의뢰인 입장에서는 적은 돈이지만 모이면 목돈이 된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2부는 지난해 2월 싸이월드 해킹 피해자 2882명이 SK커뮤니케이션즈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SK컴즈는 피해자 1명당 2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총 배상 액수는 5억7640만원에 달한다. 통상 기획집단 소송에서 승소한 경우 대리인들은 배상 금액의 10~20%를 받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이 무리한 기획집단 소송 남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누가 봐도 승소 가능성이 없는 기획집단 소송을 제기하는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며 “의뢰인들과 터무니없는 재판에 시간을 쏟게 되는 판사 모두에게 피해를 끼쳐 전체 법조비용을 늘리는 결과를 몰고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선변호사 등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자리는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 3월 국선변호사 44명 채용 모집에 397명의 변호사가 지원해 사상 최대인 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5년 전인 2008년 국선변호사 경쟁률은 23명 선발에 47명만 지원해 2대 1에 불과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채용하는 공무원 전형과 일반 기업체의 법무팀에 지원하는 청년 변호사들도 나날이 늘고 있다. 의뢰인 맞춤 전략을 쓰는 로펌도 있다. 법무법인 예율은 집이 없고, 한 달 수입이 350만원 이하인 서민들에게는 사건 수임료를 150만원 이상 받지 않는다. 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변호사들은 수임료를 낮추기 시작했고, 국선변호사나 사내변호사에도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며 “이는 다양한 분야에 낮은 가격으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겠다던 원래 로스쿨 제도의 취지에 맞게 법률시장이 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