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진정성 담긴 ‘연설의 힘’ 인생과 세상을 바꾸죠

입력 2014-01-20 01:38


이동학 다준다 정치연구소장

“여러분, 요즘 누가 웅변학원 다녀요? 학교에서 연설하는 법 배워본 적은 있어요? 아무도 가르쳐준 적 없죠?”

19일 서울 태평로 서울시청 시민청 이벤트홀. 이동학(32·사진) 다준다 정치연구소장이 무대에서 말하자 청소년과 학부모 청중 50여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 2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리는 제1회 대한민국 청소년 연설대전의 예선 자리였다.

대회의 공동 기획자인 이씨는 “사라진 연설 문화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말 잘하기로 소문난 인사들의 연설을 뜯어보고 ‘달변의 기술’을 분석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좋은 연설의 기본은 무엇이며 그는 왜 ‘달변’을 강조하는 것일까.

단문, 두괄식 화법, 적절한 통계 수치, 개인 경험의 사회화…. 이씨가 이날 ‘좋은 연설’의 기본으로 든 항목이다. 이 항목들이 문장의 구성에 영향을 끼친다면 의도적인 침묵, 손바닥을 보여주는 제스처, 청중에게 던지는 질문 등은 기술적인 구성에 가깝다. 그가 명 연설가들을 분석해 파악한 좋은 연설의 기본기들이다.

그는 “연설 잘하는 법의 기본은 접속사나 비유 등 부수적인 표현들을 최대한 줄인 짧은 문장을 쓰고, 중요한 문장을 앞에 말하는 두괄식 화법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손가락보다는 손바닥을 많이 보여주고, 중간 중간 2∼3초의 정적을 만들어주면 청중의 집중력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의 경험을 사회 문제로 전환시키는 논리력은 좋은 연설의 또 다른 힘이다. 이씨는 “내 경험을 사회 전체의 것으로 확장시키는 순간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좋은 연설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달변’의 기술을 파고드는 이유다. 그는 “달변의 기술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지만 익숙해지면 말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데 아주 유리하다”면서 “연설 잘하는 사람들이 결국 승리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1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장이 됐다. 아버지는 “두 여자(어머니와 누나)를 네가 책임지고 지켜줘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피자 배달을 할 때 그의 잠재력이 폭발했다. 손님이 현관문을 열면 춤을 추며 노래를 불러주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손님들의 웃음이 ‘빵빵’ 터졌고 피자 가게 매출은 4배로 뛰었다.

18세 때 피자 배달 중 교통사고를 겪고 한 차례 위기가 찾아왔다. 골목에서 꺾어져 들어온 승용차가 이씨의 오토바이를 들이받으면서 이씨는 그대로 기절했다. “얼른 마저 배달 가라.” 깨어난 이씨에게 피자 가게 사장이 건넨 첫마디를 듣고 그는 삶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전역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친구들에게 돈을 꿔 조그만 트럭을 산 것이었다. ‘이동학의 천원의 행복’이라는 과일주스 노점을 열었고, 곧 동네 스타가 됐다. 트럭 위에서 이씨가 만담을 쫙 풀어놓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걸음을 멈추고 모여드는 풍경이 매일 연출됐다. 자신의 인생사를 털어놓으면 사람들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게 신기했다. 자신의 주특기인 ‘말하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무렵부터다. 그는 “청소년들에게도 연설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청소년 연설대전을 기획하기로 했다.

먼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청년들을 모았다. 베스트셀러 ‘80만원으로 세계여행’으로 유명세를 탄 정상근(30) 사람에게배우는학교 대표, 임용고시 정원을 미리 알려 달라며 1인 시위를 벌여 교육부 정책을 바꾼 일명 ‘노량진녀’ 차영란(32)씨, 연설교육 청년기업 쿡스피치커뮤니케이션 대표 안채영(29)씨, 직장을 다니며 틈틈이 유명인들의 연설문을 연구해온 이나현(32)씨 등이 힘을 보태기로 했다.

후원해줄 정치인들을 찾아 반년간 국회를 돌았다. 문전박대도 당했고, 취지를 설명해도 ‘청소년 연설이 뭐가 중요하느냐’는 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끈질김은 통했다. 이계안 전 국회의원의 2.1연구소에서 사무실 한쪽에 자리를 내줬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신학용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 박홍근 국회교육위원 등이 연설대전 지원을 자처하고 나서면서 마침내 제1회 연설대전이 성사됐다.

이씨는 “내 인생은 굴곡의 역사였지만 그때마다 나는 ‘말’을 통해 탈출했다”며 “진정성 있는 연설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