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부실 조사하던 교수 숨진 채 발견… “너무 힘들다” 메모, 무슨 일 있었기에?
입력 2014-01-20 02:31
국보 1호 숭례문의 부실 복구 공사를 조사하던 대학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19일 충북 청주흥덕경찰서 등에 따르면 18일 오후 3시15분쯤 청주시 충북대 농업생명환경대 한 학과 연구실에서 박모(56) 교수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부인 서모(56)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서씨는 경찰에서 “남편과 점심을 먹기로 약속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 연구실에 가봤더니 남편이 목을 매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현장에선 박 교수가 친필로 ‘너무 힘들다.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쓴 수첩이 발견됐다.
서씨는 “남편은 숭례문 부실 조사를 맡은 뒤 심한 스트레스로 신경안정제까지 복용했다”면서 “특히 한 방송사와 인터뷰를 한 뒤 예상보다 보도가 크게 되자 걱정을 많이 했다”고 경찰에 밝혔다. 경찰이 박 교수의 개인 컴퓨터를 조사한 결과 방송이 나간 뒤 ‘숭례문’ ‘대목장’ ‘신응수’ 등을 검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경찰의 의뢰로 숭례문 복구 검증 과정에 참여했다가 외려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압박감을 느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 관계자는 “박 교수는 일부 시공업체가 검증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자신을 고소하면서 두세 차례 경찰 조사를 받게 되자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제자 한모(38)씨는 “(교수님은)전형적인 학자스타일이었다”며 “이번 검증조사 연구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데다 연구결과에 따라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크게 힘들어하셨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나이테 폭의 변동을 패턴화함으로써 문화재에 쓰인 목재의 벌채 연대 등을 알아내는 ‘연륜(나이테) 측정’의 권위자다. 그는 숭례문 복구 책임자인 신응수 대목장이 금강송을 러시아산 소나무로 일부 바꿔치기했다는 의혹 수사와 관련, 경찰의 의뢰를 받아 검증 작업을 벌여왔다. 박 교수는 숭례문 복원용 삼척 준경묘에서 베어내고 남은 금강송 밑동과 숭례문 복구에 쓰인 부재의 시료를 채취, 나이테를 비교·분석했다.
숭례문 복원에 금강송을 사용했는지 나이테 검사를 실시한 그는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기둥과 보 등 19곳 가운데 금강송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곳이 2개이고, 5개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문화재계에서는 압수수색까지 실시한 경찰 측의 증거확보 압박과 신응수 대목장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 등이 복잡하게 얽혀 목숨을 끊은 게 아닌지 추측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수사 중인 사건이어서 입장 발표나 자료를 낼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청주=홍성원 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