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계열사 합병, ‘일감 몰기’ 규제 피하기 묘수?

입력 2014-01-20 02:31 수정 2014-01-19 20:05


현대자동차그룹과 삼성그룹이 계열사 간 인수·합병을 이용해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및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두 재벌 그룹이 실질적인 일감 몰아주기 축소를 하지 않고 기업 쪼개기와 붙이기를 통해 규제 우회 및 절세를 하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6일 발표한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의 합병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게 됐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두 회사의 합병으로 현대차그룹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20% 이하로 낮아졌다. 합병 전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현대엠코 지분율은 10.00%,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율은 25.06%였다. 지분율 합계 35.06%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공정거래법은 재벌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0%(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면 과징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엠코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합병되면서 합병 법인에서 두 사람의 지분율은 크게 감소했다. 정 회장은 4.68%, 정 부회장은 11.72%로 둘이 합쳐 16.40%다. 과징금 부과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의 합병 비율은 1대 0.18이다.

현대엠코는 그동안 자동차·제철과 관련한 그룹 사업을 상당수 해왔다. 2012년 기준 내부거래 금액이 1조7588억원으로 전체 매출액의 61.19%를 차지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인 208개 대기업 계열사 가운데 내부거래 금액이 두 번째로 높다. 반면 현대엔지니어링은 내부거래 매출 비중이 4%대다. 둘을 합병하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37.6%까지 낮아지게 됐다.

이는 지난해 삼성이 삼성SDS와 삼성SNS의 합병으로 총수 일가 지분율을 낮춰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한 것과 비슷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SNS 지분율이 45.69%, 삼성SDS 지분율이 8.81%였으나 합병 법인에서 지분율 11.25%가 됐다. 이건희 회장(0.01%),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3.90%),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3.90%)의 지분을 합하면 19.06%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계열사 간 합병은 증여세 절감 효과도 낼 전망이다. 올해부터 대주주나 친인척이 3% 이상 지분을 가진 계열사와 특정 기업의 내부거래 비중이 15% 이상일 경우, 회사를 ‘증여’한 것으로 보고 15%를 넘어선 거래량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한다. 규제 기준이 되는 내부거래 비중이 지난해까지는 30%였지만 올해 15%로 대폭 낮아졌다.

현대차그룹과 삼성 모두 내부거래 비중이 작은 회사가 내부거래 비중이 큰 계열사를 흡수해 평균을 낮추는 식이어서 해당 규제에 따른 세금까지 상당 부분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계열사 간 합병을 경영권 승계와 연관지어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규제와 과세에서 벗어나려는 실질적 이유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