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라운지-정원교] 韓·中·日 ‘역사 전쟁’

입력 2014-01-20 01:34


“수많은 자료 중에서 하필 이러한 내용만 공개하는 이유는 뭔가?”

지난 17일 오후 중국 랴오닝성 선양(瀋陽) 시내 랴오닝성 기록물보관소. 중국 외교부 초청으로 동북지역 일제 침략 역사현장 취재에 나선 외신기자들 가운데 한 일본 기자가 날선 질문을 던졌다.

이곳 자오환린(趙煥林) 소장이 일제가 설립한 남만주철도회사(만철·滿鐵)가 1937년 12월 난징(南京)대학살에 직간접으로 개입했다는 자료를 공개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외조부로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만주국 정부에서 산업부 차관으로 만철을 관할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중국 동북지역은 일제의 침략, 우리 선조의 독립운동, 중국의 항일전쟁이 교차한 역사의 현장이다. 그런 만큼 중국 외교부가 지난 14일 이 지역 취재 프로그램을 홈페이지를 통해 제시했을 때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뒤 중국이 이에 대해 비난 강도를 높여가던 시점이라 의도가 읽히긴 했지만 뉴스 가치는 있다고 봤다.

외교부 외국기자신문중심(IPC)은 이번 취재에 나선 기자 수가 늦게 합류한 사람을 합해 최종적으로 39명이었다고 밝혔다. 이들 가운데 한국과 일본 기자가 똑같이 16명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동북아의 근현대사를 둘러싼 한·중·일 3국간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단면이다.

“이번 일정은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에 대응해 기획된 것 아닌가?” “외교부는 해마다 외국 기자들을 위해 취재 활동을 돕고 있다.”

일본 기자들과 IPC 관계자 사이에는 취재 첫날인 16일 선양의 ‘9·18역사박물관’과 ‘연합군 포로수용소’를 돌아볼 때부터 이러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더욱이 일본 관동군이 운영한 연합군 포로수용소와 중국이 관동군 전범을 관리했던 푸순전범관리소가 뚜렷이 대비된 대목에서는 일본 기자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전자는 포로를 인간 이하로 취급했으나 후자는 ‘전범을 친구로’ 교화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전후 질서’를 파괴하고 군국주의로 되돌아가려는 일본, 일본의 잘못된 행보를 강하게 비판하는 중국, 그러한 상황을 현장에서 기사화하는 한국 언론. 동북아 역사의 과거와 미래를 곰곰 생각하게 해 준 기회였다.

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