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침해 방지” vs “과거 회귀 반대”… 서울 학생인권조례 개정안 입법 예고 파장

입력 2014-01-20 01:32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교육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진보성향의 곽노현 전 교육감이 만든 학생인권조례 내용 가운데 학생 동의 없이 복장과 두발을 규제하거나 소지품 검사 등을 할 수 없게 돼 있던 조항을 학칙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바꾼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긴 생머리·미니스커트 교복 다시 금지될 수도=학생인권조례가 처음으로 도입된 지난 2012년 획일화된 단발과 스포츠머리, 넉넉하게 큰 교복으로 대변되던 일선 학교 현장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귀밑 3㎝ 단발머리를 하던 여학생들은 긴 생머리를 찰랑대며 등교하기 시작했고, 졸업할 때를 고려해 넉넉하게 맞췄던 교복치마는 무릎 위로 점점 올라가 ‘미니스커트’를 입는 학생들까지 등장했다. 학생부장 교사가 학생들이 담배나 술, 화장품 소지를 단속하기 위해 학생들의 가방을 뒤지는 일 역시 사라졌다. 훈육을 목적으로 시행되던 교사의 체벌도 학생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자취를 감췄고, 학생들은 환호했다.

교육계가 평가하는 학생인권조례의 긍정적 측면은 이런 외관적인 변화 외에도 학교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던 체벌·학생권리·개성추구 등을 성찰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학생인권을 존중하는 학교 문화가 도입됐음은 물론, 생활지도에 있어서도 ‘처벌’과 ‘통제’가 아닌 학생의 의견을 청취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번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과거로의 회귀’로 인한 학생들의 불만과 일선 학교 현장의 혼란이 예고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학생 동의 없이 복장과 두발을 규제하거나 소지품 검사 등이 ‘학칙에 따라’ 다시 가능해지므로, 학생들이 2년간 누려왔던 긴 생머리나 미니스커트 교복은 다시 사라질지도 모른다. 대신 몽둥이를 든 학생부장 교사가 다시 등교 시간마다 교문 앞을 지키고 운동장에선 ‘복장 불량’ 학생이나 지각생들이 ‘토끼 뜀’이나 ‘얼차려’를 받는 풍경이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시 학생참여단의 김수경(17·여)양은 “시행된 지 채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조례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모습들이 오히려 학교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며 “교권이 실추됐다거나 사회적 합의가 미진하다는 등의 추상적인 이유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권침해 사례 하루 평균 40건=그러나 일선 교사들은 훈육 차원에서 매를 들면 학생들이 ‘동영상 찍어 올리겠다’며 스마트폰을 들이민다며 학생지도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학생들이 파마나 염색을 해도 ‘넌 왜 머리가 이렇게 단정하지 않아’라고 지적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최근 정년을 채우기도 전에 명예퇴직하려는 교원들이 늘어나는 것도 ‘추락한 교권’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이번 조례안 개정 추진에는 최근 교실에서의 교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사회적 우려가 작용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에서 하루 평균 40건의 교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다. 2009년 1570건에 이르던 교권 침해 건수는 2012년 7900건으로 늘었고, 교사에 대한 폭행이나 성희롱도 4년 동안 200건이나 발생했다. 이에 반해 교사의 학생 체벌 건수는 하락세였다.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9년 18건, 2010년 28건, 2011년 27건, 2012년 23건, 2013년(6월 말 기준) 3건으로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김 의원은 “교사의 과도한 체벌이 줄어드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학생에 의한 교사폭행 증가세와 맞물려 생각한다면 교사는 늘어나는 학생의 폭력행위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육계 일각에서 현재 조례가 교사의 행동을 제약하고, 교사의 방임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서울 강북의 한 고교 교사 김모(32·여)씨는 “그동안 학생인권조례 내용이 지나치게 학생 개인의 권리만 강조해 교사의 학생지도권을 제한해 왔다는 비판이 제기돼 온 만큼, 이번 개정안 입법 추진은 학교의 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시교육청은 1월 중 개정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거친 뒤 시의회에 조례 개정안을 제출할 방침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에서 개정안을 의결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은 상황이다.

오승걸 서울 남서울중 교장은 “지난 2011년 영국 정부가 발표한 학생훈육 지침서는 학생인권 보호를 위해 강조된 노터치 정책(No touch policy)을 완화해 ‘교사가 합리적 수준의 물리력을 사용할 법적 권리를 인정하고, 술·마약·절도품 등에 있어서는 학생 동의 없이 수색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이제 성과는 살리고 문제점은 극복하는 방향에서 학생인권 조례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