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외면한 돈’ 상가 권리금을 취재하며 해묵은 궁금증 하나가 풀렸다. 5∼6년 전만 해도 툭하면 가로수길에 놀러가자던 아내가 왜 요즘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지. 아내는 가로수길의 아기자기한 카페며 식당을 재미있어 했다. 인터넷에 누군가 올려놓은 맛집을 찾아내선 “오늘은 여기 가보자” 하곤 했다. 그 거리를 산책하는 건 돈도 별로 안 드는 일이라 나도 큰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가로수길 가볼까?” 해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유를 물으니 “동네가 변했다”고 한다. 투덜대는 말을 정리하면 가로수길은 크게 두 가지가 변했다. 너무 비싸졌다. 강북의 대학교 앞에서 인기를 끈 디저트 가게가 가로수길에 분점을 냈는데 얼마 안돼 똑같은 음식이 값은 거의 배로 뛰었다. 그리고 눈에 잘 띄는 자리마다 어느 상권에나 있는 대형 커피점, 옷가게,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이 거리를 ‘가로수길’로 만들어준 특색이 사라지고 있다.
불과 5∼6년 만에 이 길은 왜 이렇게 변했을까. 권리금 때문이다. 상가 권리금은 임차상인들이 임대료를 올려줄 수밖에 없는 ‘인질’이 된다. 상인 A가 이전 상인에게 권리금 1억원을 주고 점포를 넘겨받았다. 건물주 B와는 월세 200만원에 2년 계약을 했다. 2년 뒤 재계약 때 B가 월세를 400만원으로 올려 달라고 하면? A는 절대 이를 거절할 수 없다.
월세 올려주기 싫으면 점포를 빼야 한다. 그냥 나가면 권리금 1억원을 날리니까 권리금 주고 들어오겠다는 다른 상인 C를 찾았다. 하지만 A가 C로부터 권리금을 받느냐는 전적으로 B에게 달렸다. B가 “C의 업종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그 점포 내 조카 주련다” 하면서 C와의 계약을 거부하면 A는 권리금을 날리고 그냥 나가야 한다.
가로수길의 한 상인(47)은 “이 동네에선 통상 1년마다 재계약이 이뤄지고 그때마다 월세가 배로 오른다”고 했다. 이렇게 오르는 월세를 상인이 감당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매출을 늘리거나 비용을 아끼거나. 매출을 늘리려고 값을 올리고, 비용을 아끼려고 값싼 재료 쓰면서 종업원을 줄인다.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꽤 남던 장사도 ‘인건비 따먹는’ 구조로 전락한다. 주인이 직접 설거지를 하고 종업원 대신 가족들이 매달려 겨우 지탱하다가 “왜 이 고생을 하나” 싶어 포기하는 게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현실이다. 창업 대비 폐업률, 그러니까 ‘자영업 실패율’은 80%가 넘는다.
권리금에 발이 묶여 월세 올려주다 떨려나는 점포, 근근이 버티곤 있지만 더 이상 올려줄 여력은 없는 점포에 대형 자본이 찾아간다. 건물주로선 이보다 반가운 일이 없다. 큰 기업이 운영하는 매장은 고객 서비스를 위해 알아서 화장실도 고치고 낡은 시설을 개선한다. 요즘 건물주들 사이에선 건물을 통째로 빌려줄 ‘큰손’ 임차인을 찾는 게 유행이다. 엘리베이터까지 스스로 설치하니까.
가로수길이 그랬다. 아기자기하던 거리가 자본의 색깔을 입고 가격표 숫자마저 바뀌자 아내는 발길을 끊었다. 법이 외면해 폭탄 돌리기가 돼버린 권리금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빼앗고 더 많은 지출을 강요하며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결코 소비자와 무관한 돈이 아니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의 김남균(40)씨는 “양질의 상권, 독특한 문화를 가진 거리가 결국 유흥가로 바뀌는 구조의 핵심에 권리금이 있다”며 “단적인 사례가 신촌”이라고 말했다. 한때 대표적 대학가였던 곳이 지금은 완벽한 유흥가로 변한 과정에도 권리금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태원준 사회부 차장 wjtae@kmib.co.kr
[뉴스룸에서-태원준] 상가 권리금, 소비자와 무관할까
입력 2014-01-20 01:36 수정 2014-01-20 0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