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파일] 청춘의 덫 ‘치열’
입력 2014-01-20 01:33
2014 갑오년은 ‘청마(靑馬)의 해’라고 한다. 청마라면 파란색 말? 실제로 파란색 말은 없다. 청(靑)이라는 낱말이 ‘젊고 활기찬’이란 뜻의 수식어로도 쓰이므로 청마는 ‘젊고 활기찬 말’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흔히, 풋풋하지만 천방지축으로 나대는(?) 젊은이들을 일러 청춘(靑春)이라고 하듯이 말이다.
청마의 해에 청춘들은 그저 건강하고 즐겁기만 할까? 작금의 사회현상 등을 미루어 본다면 아마도 그렇지만은 않아 ‘안녕들 하지 못한’ 모양이다. 대체로 청춘의 시기에는 병에 잘 안 걸린다. 그러나 이 시기에 더 잘 걸리는 것도 있다. 한 예로 젊은이의 자살이 그렇다.
필자의 전문 분야인 항문병 중에선 치열(痔裂)이 다른 질환과 달리 청년기에 흔한 질환으로 분류된다. 치열은 항문 치(痔) 찢어질 열(裂), 즉 항문이 찢어지는 병이다. 항문이 이렇게 찢어지게 되는 것은 변이 단단해지거나, 또는 스트레스 등으로 항문괄약근이 과도하게 긴장되어 항문이 좁아져 있는 상태에서 배변을 하게 되는 탓에 발생한다. 역시 청춘의 시기는 스트레스가 많은 때인가 보다. 그래서 치열은 때때로 ‘청춘의 덫’이란 비판을 받기도 한다.
우리 몸의 생리 기능은 규칙적인 것을 좋아한다. 다시 말해 ‘먹고, 자고, 배설하는’ 시간이 대체로 규칙적일 때, 우리 몸은 기능적으로 더 잘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의 몸한테 이런 생활규칙을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몸의 여러 기능들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생활의 리듬이 깨지니 몸의 리듬도 깨져 있기가 일쑤이다. 그러니 몸은 항상 비상상태다. 배변도 원활하지 못하고, 식사마저 불규칙하다. 잦은 스트레스 상황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평형마저 깨뜨린다. 치열이란 항문병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다.
치열에 걸리면 배변 시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약간의 출혈을 경험한다. 초기라면 따뜻한 물로 좌욕을 하며, 규칙적인 생활로 배변 리듬을 되찾도록 노력하고, 약물치료와 좌약 사용 등으로 개선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치료에도 불구하고 배변 시 통증과 출혈 증상이 계속되거나, 치료할 때만 잠깐 좋아졌다가 이내 되살아나는 증상이 반복될 경우엔 ‘만성 치열’로 발전한 게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
치열이 궤양화, 만성화되었다면 수술이 꼭 필요하다. 다행히 만성치열을 바로잡는 수술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당일 수술이 가능하며 수술 후 바로 일상생활을 하기에도 별 지장이 없다. 다만 치핵이나 폴립 등이 너무 커져서 동반수술을 필요로 하거나 찢어진 부위에 염증이 생겨서 농양이나 치루로 발전했을 때는 치료가 좀 더 어려워져서 수술 시 1∼2일간 입원이 필요하다.
모든 병이 그렇듯이 치열도 초기에, 가능한 한 빨리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증세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선호 구원창문외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