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 기쁨-Helper’s High] “인기? 사업? 저에겐 컴패션이 더 중요해요”

입력 2014-01-20 02:35

컴패션밴드 리더 심태윤

가수이자 작곡가이면서 서울 강남에서 식당만 예닐곱 곳을 경영하는 성공한 사업가 심태윤(37)씨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만 했다.

“인기? 정말 의미가 없죠. 빵(0)이에요 빵.” “저에게는 사업보다 컴패션이 더 중요해요.”

그는 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을 알리는 음악활동모임 컴패션밴드의 리더다. 컴패션밴드의 모든 멤버들은 자원봉사자다. 지방도 자기 돈을 들여 찾아가서 공연한다. 심씨는 리더를 맡은 2007년부터 지난 18일 부산에서 열린 공연까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컴패션 직원들보다 더 열심히 한다.

그는 몇 해 전 한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 돈과 여자밖에 몰랐다”고 고백했었다. 왜 바뀌었을까.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한국컴패션 본사에서 심씨를 만나 물어봤다. 그는 어젯밤 TV에서 한 예능프로그램 얘기부터 했다.

“힐링캠프 보셨어요? 휘재형이 나와서 얘기하는데 옛날 생각 많이 났어요.”

서울예대 연극과를 다니던 학생시절 그는 이미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시트콤에도 출연하고, 김건모 신승훈 박미경 클론 등 앨범을 내면 100만장씩 팔던 가수들이 포진한 라인기획에 들어갔다.

“스타도 아닌데 스타들이 누리는 것을 같이 누렸어요. 나도 데뷔만 하면 100만장 가수가 될 줄 알았죠.”


2001년 발표한 첫 앨범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소속사 선배들과 비교하면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가수 활동을 하긴 했는데 (선배들에게) 치여서 살았다”고 했다. 더 노력하기보다 놀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자신은 가수인데 “웃겨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싫어 예능프로그램도 그만뒀다.

“뮤지션이란 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제 이름을 숨기고 ‘스테이(Stay)’란 예명으로 발라드 음악을 했죠. 생업이 있어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압구정동에 식당도 차렸어요.”

인기도 얻었고, 장사도 잘 됐다. 그런데 왠지 공허했다. 내가 원했던 것이 이런 것인가. 신문에서 어느 원로배우의 부고(訃告)를 보았다. 젊은 시절 70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했던 대배우라고 했지만, 심씨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영화 70편의 주인공이었으면 당대를 주름잡았던 분이셨을 텐데, 저는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그렇게 조용히 끝나는 게 인생이었던 거죠. 아, 인기라는 게 정말 의미가 없구나. 나도 50∼60년 뒤엔 죽을 텐데 이 길을 따라 가봐야 아무 것도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 무렵 컴패션을 만났다. 헬스클럽에서 가수 구준엽씨와 운동하다 우연히 탤런트 차인표씨를 만났다. 차씨는 구씨에게 “컴패션밴드라는 좋은 모임이 있는데 같이 활동해요”라고 말하고는 심씨에게도 ‘예의상’ 한마디 했다. “태윤씨도 한번 와보세요.”

컴패션밴드의 공연을 보러 갔다. 강남역 부근의 한 교회였다. 감동이었다. 한 아이를 살리는 일이 이렇게 가능하구나. 이렇게 행복하구나. 공연이 끝날 때 심씨도 환송인사가 담긴 팻말을 들고 밴드와 함께 섰다. 팻말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날 새벽까지도 그 거리에서 술 마시고 놀았거든요, 혹시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창피해요. 컴패션 욕 먹일까봐 얼굴을 가렸어요.”

그렇게 부끄러운데 왜 컴패션밴드에서 활동했을까.

“그 전에 내가 친했던 형들을 만나면 솔직히 주식 얘기를 많이 해요. 어떻게 하면 돈을 버느냐, 어떤 차가 좋으냐, 어떻게 예쁜 여자를 만나느냐. 그런 얘기뿐이었어요. 돈 많고 주식 잘하는 형들이 멋있어 보여 따라다녔죠. 그런데 컴패션밴드 리더였던 인표 형은 사석이든 어디서든 ‘어떻게 하면 한 명의 어린이라도 더 살릴 수 있을까’, 이 얘기밖에 안 해요. 월드컵이 열린다고 하면 월드컵을 이용해 후원자를 모을 아이디어를 100가지 내놔요. 지구촌 어디서 지진이 나면 사람들을 불러서 그곳 어린이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요. 같이 만나서 놀기만 해도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었어요. 와, 닮고 싶다, 나도 같이 하고 싶다. 그렇게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제 주위엔 컴패션 활동하는 사람들만 있는 거예요.”

컴패션은 늪이었다. 빠져들었다. 비전트립(후원자들의 현장 방문여행)도 따라갔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만나러 다니고 밤이면 목사님과 둘러앉아 이야기했다. 여행이라고 하면 낮에는 맛집 돌아다니고 밤이면 술 마시는 것인 줄 알았는데 너무나 달랐다. 그런데, 이렇게 재미있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혼자 하는 콘서트는 끝나면 공허했지만, 컴패션밴드의 공연이 끝나면 그날 몇 명의 후원자가 생겼는지 관심이 생겼다. 1명이 후원하면 1명의 어린이가 살아나고, 100명이 후원하면 한 지역의 어린이가 살아난다. 비전트립에서 만난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컴패션밴드를 하면서 저 혼자 가수로 활동해 인기를 얻고 이런 게 뒤로 밀렸어요. 사실은 연예인이 아닌 게 더 좋겠단 생각도 들어요.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단 생각까지 하게 됐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에게는 생업보다 컴패션이 더 중요해요.”

식당도 잘되고, 사랑하는 여자친구도 있으니 복에 겨워서 하는 말이 아닐까.

“매장이 아무리 많아도 지진 한 번에 날아갈 수도 있잖아요. 나도 언젠가는 죽을 건데. 영원하지 않은 것에 내 목숨을 걸 필요가 있을까요.”

2007년 차인표씨가 그에게 “밴드 리더를 맡아 달라”고 부탁한 이유를 알만하다. 지난달 발매한 컴패션밴드 앨범 2집에는 그가 작사·작곡한 ‘연을 날리자’란 노래가 실려 있다. 필리핀의 쓰레기마을에 사는 소년 알조의 실제 이야기를 담았다. 쓰레기더미를 뒤져 만든 연을 하늘 높이 날리는 알조를 보면서, 한 어린이를 돕는 일이 쓰레기가 연이 되는 것과 같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엔 온통 쓰레기/아무도 없고 혼자라고 느껴질 때/눈을 들어 하늘을 봐/주위를 돌아보렴/니 곁엔 내가 또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와.’

컴패션밴드의 공연을 보는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행복이죠! 한 어린이를 돕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보여주고, 여러분도 이 좋은 일에 동참해 함께 행복해지자는 것이 우리의 메시지입니다.”

심씨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와 요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노래를 들려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였을 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행복했단다. 지금도 그는 여전히 기쁨과 행복을 나눠주고 있는 셈이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