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일본 신복규 선교사] 유학 초기 어머니같이 보살펴 주신 선생님에게 복음 은혜가…

입력 2014-01-20 01:31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사14:24)

1987년 12월 31일 아내, 두 딸과 함께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김포공항 출국장을 나서면서 환송해 주시는 분들께 손을 들어 답례하는 꿈을 꾸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내에게 “올해는 기어이 일본에 갈 것 같다”고 말했다. 1986년부터 일본 신학교 유학을 준비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유학원에 서류를 냈으나 연락이 없어 비즈니스 비자를 신청한 상황이었다.

서울 성광교회 교회학교 유년부장을 맡으면서 어린이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좀 더 공부를 해서 바로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 방배동 총회신학교에서 통신교육을 받았다. 연 2회 학교에 가서 공부를 했는데 더 심도 깊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서 목회자가 되라는 권유도 있었다. 그때마다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고 돈도 많이 벌어 주님의 몸 된 성전을 섬기는 장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자꾸만 목회자의 길로 향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내에게 그런 의중을 비쳤더니 “이대로가 좋은데 무슨 고생을 하려고 목회하느냐”며 펄쩍 뛰었다. 어머니도 강하게 반대하셨다.

그러던 중 일본에 거주하던 친구가 ‘일본에서 신학공부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며 권했다. 정말 실력 있는 교수님이 많은데 한번 해 보라고 했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교회 권사님이 ‘일본에는 절대 남편을 보내지 말라’고 충고하셨기 때문이란다. 과거 남편을 일본에 유학 보냈는데 결국 헤어졌다면서 말이다.

1988년 5월 30일 아내와 자녀, 교회 식구들과 헤어져서 선배 두 명과 함께 일본에 도착했다. 일본 출입국 관리소에서 3개월 비즈니스 비자를 받고 짐을 찾아 잘 나왔다. 그런데 함께 온 선배들이 깻잎 두 박스를 가지고 오다가 그만 적발됐다. 출입국관리소 관계자는 혹시나 벌레가 없나 2시간 동안 깻잎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꼼꼼하게 검사했다.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 시내를 돌아보면서 과연 선진국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거리가 무척 깨끗했다. 질서를 잘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도 조만간 올림픽이 열리는데 이곳처럼 깨끗하게, 그리고 질서를 잘 지켜서 선진국으로 도약했으면 좋겠다’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1개월간 도쿄 지리를 익히며 7월부터 도쿄 고지마치에 있는 일본어학교에서 어학 공부를 시작했다. 유학비자가 안 나온 상태였지만 무조건 일본어학교 기초반부터 입학한 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많았는데 중국, 태국, 필리핀 학생들도 있었다. 일본어를 전혀 못했지만 매일 수업시간 10분 전 맨 앞자리에 앉아 강의에 집중했다. 집에 와서 뜻도 모르면서 일본어 성경을 매일 2시간 이상씩 소리 내어 읽었다. 실력은 조금씩 좋아졌다.

문제는 비자를 갱신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연장이 안 될 경우 영락없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국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난 상태라 잘못되었다가는 난처한 상황이 됐다. 아내와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매일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나카가와(中川貴美子) 선생님이 나를 좀 보자고 했다.

“내 남편이 당신의 보증을 서 주면 안 되겠습니까?” “예?” 그러면서 선생님이 학교 학생의 보증을 설 수가 없기에 자기 남편에게 부탁을 해서 보증을 서 주시겠다고 하셨다. 부탁도 안 했는데 하나님께서 일본어 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다.

나중에 보증을 서 주신 이유가 무엇이었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다른 학생들과 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항상 일찍 와서 제일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좋게 보여 보증을 서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선생님의 남편은 일본 굴지의 종합상사 임직원으로 당시 연봉이 3000만엔이 넘는 분이었다. 그런 분이 보증을 서니 비자갱신에 문제가 없었다. 현재 83세이신 선생님은 지금까지 나의 좋은 동역자이고 어머니 같은 분이시다.

나카가와 선생님은 나중에 나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했다. 선생님이 먼저 세례를 받고 남편은 한참 후에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나카가와 선생님께 신학대 입학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일본어로 쓰고 감수를 부탁드렸는데 내용을 보신 다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고개를 저었다. 예수님을 전할 때 처음에는 동정녀 탄생과 죽은 자가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런 분이 어느 날 전화가 와서 예수님을 믿으시겠다고 하면서 교회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어느 날 창밖을 바라보다 나무에서 단풍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할렐루야!

복음의 작은 씨앗이 그분의 마음속에 떨어졌고 싹이 나서 조금씩 성장한 것이다. 세례를 받던 날 온 가족이 꽃다발을 준비해 가서 축하했다.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던지 눈물만 나왔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이 90년 일본에 왔을 때는 친손녀처럼 집에 초청해 주셨고, 유원지 등에도 데려다 주셨다. 설날에는 용돈도 많이 주셨다. 교회창립 1주년 때는 야마하 피아노를 기증해 주셨다. 2년 전에 장녀 현정이가 결혼할 때도 거액을 쾌척해주신 고마운 분이다.

89년 일본어학교에서 학생회 부회장에 선출됐다. 회장이 그만두는 바람에 1년 동안 학비를 면제받고 무사히 일본어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나카가와 선생님의 소개로 일본 신학교 청강생으로 공부했다.

그 해 9월부터 오전에는 일본어학교에서 공부하고, 저녁에는 일본성서신학교의 청강생이 되어 신학을 공부했다. 자유신학을 접하면서 갈등도 많았지만 나중에 목회를 하면서 큰 도움이 됐다.

95년 동경성광교회를 개척한 후 교회에서 외국인들에게 무료 일본어 강좌를 실시했다. 나카가와 선생님은 무보수로 3년간 일본어를 가르쳐주셨다. 한국인, 중국인, 중국교포, 미얀마인, 필리핀인 등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일본어를 배웠고 교회에서 세례를 받는 사람도 있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계획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처음 일본에 올 때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 일을 이루시기 위해 미리 사람을 예비해두시고 그 길로 가게 인도해주셨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은 언제나 내 길을 열어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 일본에 온 지 햇수로 26년째다. 지금까지 모든 일들을 뒤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이레로 준비하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확신이 든다.

일본 신복규 선교사

신복규 선교사 △1953년생 △예장 합동 총회 세계선교회(GMS) 소속 △1988년 일본 입국 △총회신학원, 일본 기독교 단기대학, 동경기독교신학교 졸업 △1992년 일본 선교사 파송, 일본 수미다교회 협력선교사 △1995년 동경성광교회 개척 △현재 일본 노숙자 급식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