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찬희] 앵그리 버드

입력 2014-01-20 01:37

빨강 노랑 검정 등 강렬한 색깔의 새들이 새총 위에 올라타 초록색 돼지를 공격하는 ‘앵그리 버드’는 ‘대박’이 터진 스마트폰 게임이다. 짙은 눈썹을 치켜 뜬 앙증맞은 모습, 알록달록한 색감을 담은 배경화면은 수많은 이용자를 열광시켰다.

2003년 3명이 창업한 로비오 엔터테인먼트는 앵그리 버드 하나로 우뚝 섰다. 2012년 총 매출은 1억9560만 달러, 순이익은 7130만 달러에 이르렀다. 직원 4명이 3개월 동안 개발한 이 게임은 5억건을 훌쩍 넘긴 내려받기 실적을 자랑한다. 장난감, 캐릭터 상품, 문구, 의류에 이어 영화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스마트폰 이용자들은 매일 3억분의 시간을 이 게임에 쓴다. 매월 100만장가량의 캐릭터 티셔츠가 팔린다.

로비오 엔터테인먼트는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서쪽으로 16㎞ 떨어진 에스푸에 둥지를 틀었다. 에스푸는 핀란드의 상징적 도시다. 한때 핀란드를 ‘노키아 공화국’으로 불리게 했던 노키아 본사가 이곳에 있어서다. 1865년 제지 회사로 출발한 노키아는 1992년 휴대전화와 정보통신에 집중하면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9년 세계 1위에 오르면서 ‘황금시대’를 열었다. 노키아는 2007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3분의 1 이상을 장악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절정의 순간은 동시에 추락의 시작점이었다. 잘나가던 노키아는 한순간 삐끗하면서 몰락했다. 한때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던 노키아의 침몰은 경제위기로 직결됐다. 핀란드의 경제성장률은 2008년 0.3%, 2009년 -8.5%로 급전직하했다. 위기의 순간에 핀란드 정부는 제2의 노키아를 키우기보다 벤처, 창업, 창조경제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노키아의 도시였고 이제는 앵그리 버드의 고향이 된 에스푸가 최근 ‘유럽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이유다.

노키아와 핀란드 사례는 삼성전자를 떠올리게 한다. 삼성전자의 지난 4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18.3%나 줄었다는 실적 발표가 나오자 온 나라가 난리다. 삼성전자가 재채기를 하면 우리 경제는 독감에 걸릴 형편이다. 걱정이 커지자 너도나도 제2, 제3의 삼성전자를 발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몇몇 대기업에 편중되는 경제·산업 구조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할까. 앵그리 버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심각한 청년실업, 산업구조 양극화, 꽉 막힌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돼지들을 무찌르려면 덩치 큰 ‘공룡’보다는 ‘화난 새들’이 필요하다.

김찬희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