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에게 말이란] 풍요와 다산 그리고… 소통의 메신저
입력 2014-01-18 01:35 수정 2014-01-18 14:41
“말∼ 달리자!”
올해는 갑오년(甲午年) 말(馬)띠 해다. 말은 우리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동물 중 하나다. 말의 역동적인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힘과 용기를 얻기도 한다. 말은 살아있을 때는 승마(乘馬)와 역마(驛馬) 등 교통과 통신으로, 전마(戰馬)와 기마(騎馬) 등 군사 및 수렵으로 쓰였다. 죽어서는 갈기는 갓으로, 가죽은 신발과 주머니로, 힘줄은 활로, 똥은 거름과 마분지(馬糞紙) 원료로, 고기는 식량으로 사용됐다.
말의 권능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이유는 타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산지가 많은 한반도에서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말을 탔다. 그래서 말 한 필은 노비 두세 명과 바꿀 정도였다. 하지만 말의 위상은 19세기 말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급속히 떨어졌다. 그 역할은 철마(鐵馬·기차)와 승용차가 대신했다. 그러나 포니, 갤로퍼, 에쿠스 등 승용차 브랜드는 말과 관련이 있어 ‘말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옛 그림이나 유물에 등장하는 말은 왕의 권력, 선비의 품격, 서민의 해학 등을 보여주었다. 1973년 경북 경주 황남동 155호 고분(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天馬圖·국보 207호)는 5∼6세기 신라시대에 그려진 벽화다. 백마가 꼬리를 세우고 하늘을 달리는 모습이다. 왕이나 최고 권력자의 시신을 하늘 세계로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할 정도로 말은 권위의 상징이었다.
14세기 중엽 고려 공민왕(1330∼1374)이 그린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는 힘차게 말을 달리는 기마인물의 모습으로 왕권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인물의 옷과 말 장식의 색채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말은 선비의 품격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조선후기 화가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유하백마(柳下白馬)’를 보자. 버드나무 아래 우아한 자태로 서 있는 말의 모습에서 고고한 선비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말은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위로의 동물이기도 했다. 조선후기 화가 혜원 신윤복(1758∼?)의 풍속화 ‘연소답청(年少踏靑)’을 보면 킥킥 웃음이 난다. 선비와 기생이 들놀이를 하고 돌아오는 모습을 해학적으로 묘사했다. 기생들은 모두 말을 타고 선비들은 술에 취해 뒤에서 걸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신분을 구분해서 그렇지 말은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태운다.
말의 힘찬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문화행사도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서울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말띠 특별전 ‘힘찬 질주, 말’을 전시 중이다. 충북 단양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온전한 말 머리뼈, 부산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말 모양 토기’, 서울 마장동의 유래가 된 조선시대 사복시(司僕寺·임금의 가마와 외양간을 관장하던 기관) 마장원(馬場院) 목장지도, 부부 금실과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조선시대 ‘곤마도(滾馬圖)’, 조선후기 화가 지운영(1852∼1935)의 ‘유하마도(柳下馬圖)’ 등 말 관련 자료 70여점을 선보인다.
경기도 용인 상갈로 경기도박물관(관장 이원복)도 체험 전시 ‘말 타고 지구 한 바퀴’를 연중 개최한다.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 토기’(국보 91호), 조선 태조 이성계의 말 8마리를 그린 ‘팔준도첩(八駿圖帖)’ 가운데 위화도 회군 때 탄 제주산 ‘응상백(凝霜白)’, 중국 당나라 때 화가 한간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조야백도(照夜白圖)’, 삼국시대 ‘말 모양 토우’, 조선시대 ‘마패’ 등을 볼 수 있다.
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는 한국 몽골 호주의 현대미술 작가 28명의 말 그림과 조각, 설치작품 등 70여점을 ‘청마시대’라는 타이틀로 전시한다. 또 한국영상자료원은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 KOFA에서 ‘말의 해 특별전’을 연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특별은곰상을 받은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1),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말띠 신부’(1966), 김보연과 사미자가 호흡을 맞춘 ‘말띠 며느리’(1979)가 상영된다.
이원복 경기도박물관장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고 친숙한 삶의 동반자로 인간과 교감해온 말을 통해 소통의 정신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