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공포’ 다시 덮치나] ‘살처분 악몽’ 또?… 설 민족대이동 앞두고 방역 초비상
입력 2014-01-18 02:42
민족 대이동이 이뤄지는 설을 앞두고 전북 고창 오리농가에서 고병원성 의심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면서 방역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와 지자체는 해당 농장의 가축을 살처분하고 농장 출입 기록을 역추적하는 한편 통제초소를 설치하는 등 긴급 방역에 나섰다.
◇2년8개월 만에 재연된 악몽=농림축산식품부는 17일 AI 긴급행동지침에 따른 조치에 착수했다. 해당 농가의 오리를 모두 살처분하는 한편 농가를 출입했던 운반차량이 출입했던 도계장을 폐쇄했다. 그러나 농식품부 스스로도 AI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던 상황이라 예방 조치가 적절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오는 5월까지를 구제역·AI 특별대책 기간으로 정해 비상체제를 가동하고 국경 검역을 강화했다. 최근 홍콩, 캐나다에서 AI 감염 환자가 잇따라 발생하는 등 유입 위험성이 높고 중국 광둥성에서 채취한 거위 시료에서 신종 AI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등 중국 내 유행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2011년 5월 이후 또다시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예방 조치는 물거품이 됐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이번 AI 대응은 지난해부터 시행하는 차량등록제를 활용해 의심 농가를 방문한 차량을 바로 추적 조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초동대응 태세를 신속히 갖출 수 있었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선 해당 농장 상공에서 열흘 전쯤 철새인 가창오리가 떼를 지어 날았다는 목격담이 전해지는 등 철새의 분변을 통해 AI 바이러스가 전파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전국 확산 우려=고창의 오리농가는 새끼 오리를 전국으로 분양하는 종(種)오리 농장이다. 따라서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새끼 오리들이 전국 오리 농가로 팔려나갔다면 분양을 받은 농가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AI는 잠복기가 최대 21일이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갖고 있어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기간이 길다.
실제로 해당 농장에선 잠복기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전국 4개도 24개 농가에 새끼 오리를 공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운반차량이 충북 진천의 도계장(가금류 도축장)에 드나든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우려는 더욱 커지게 됐다. 오염된 깃털·분변 등이 도계장에 모여든 전국 각지의 운반차량에 묻어 바이러스를 전국으로 퍼뜨렸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AI에 감염될 경우 씨오리는 산란율 감소와 경미한 폐사가 나타나지만 육용 오리는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 경향이 있어 실제로 감염됐다 하더라도 발견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육용 오리 농가 인근의 닭 농가 등에서 AI가 급속도로 확산될 수 있다. 그러나 AI 바이러스는 공기로는 전염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과 가축의 이동을 적절히 통제하는 것에 방역의 성패가 달려 있다. 민족 대이동 기간인 설 명절을 앞두고 있어 축산 농가의 출입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공산도 크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모든 축산 농가의 가축, 출입차량, 축산 종사자에 대한 일시적 이동중지 조치(standstill) 발동을 포함한 대응책을 검토 중이다.
◇닭·오리고기는 안전=국내에서는 2003년 12월∼2004년 3월, 2006년 11월∼2007년 3월, 2008년 4월∼5월, 2010년 12월∼2011년 5월 등 모두 네 차례 고병원성 AI가 발생했다. 이 기간을 전후로 위해 가능성을 우려한 소비자들이 구매를 꺼리면서 닭·오리 소비량이 급감해 관련 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사람이 AI에 감염된 사례는 한 차례도 보고되지 않았다. AI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되려면 닭·오리 등에서 장기간 순환감염이 이뤄지면서 인체 감염이 가능한 형태로 변이돼야 하고 사람과 직접 접촉이 이뤄져야 해 일반인이 AI에 감염될 개연성은 매우 낮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동남아 국가를 중심으로 발생한 AI 감염 환자들은 대부분 감염된 닭·오리 등을 도축했거나 싸움닭을 취급하는 등 닭이나 오리와 빈번하게 접촉한 것으로 조사됐다. AI 바이러스는 75도 이상에서 5분간 가열하면 모두 사멸하기 때문에 익힌 닭고기나 오리고기, 계란 등을 먹어도 전염 위험성이 없다. 설령 AI에 오염된 음식물을 그대로 먹어도 강한 위산에 AI 바이러스가 사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