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공포’ 다시 덮치나] 닭·오리 사육농가들 긴장

입력 2014-01-18 02:43

“이제 어쩌죠? 진짜 그 병에 걸린 게 맞나요?”

17일 전북 고창군청과 고창부안축협에는 하루 종일 전화벨이 울렸다. 고창군 신림면의 한 종(種)오리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자 “사실이냐”고 물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하는 농민들의 전화였다.

2년8개월 만에 다시 고병원성 AI가 발생하자 축산농가들에 초비상이 걸렸다. 유입 경로에 따라 살처분 범위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설 명절을 앞둔 농가들이 애간장을 태우게 됐다. 특히 이날 오후 이 농장에서 10㎞쯤 떨어진 부안군 줄포면에서도 AI 의심 신고가 접수돼 긴장감이 확산되고 있다.

고창군 부안면에서 20년째 닭을 키우는 정모(59)씨는 “아침부터 동료들과 계속 통화하며 ‘각자 소독을 철저히 하자’고 다짐했다”며 “우리 농장이 이번에 병이 발생한 농장에서 3㎞ 내에 있는 데다 고속도로에 붙어 있어 걱정이 크다. 만약 일이 생기면 6만여 마리의 닭을 모두 매몰해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양계농장을 운영하는 오모(52)씨는 이날 “우리는 1∼2㎞ 안에 있다. 어제부터 방역 작업만 하고 있다. 2011년 메추리 농가의 AI 발생 때는 다행히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확산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라며 불안한 심정을 밝혔다.

고창 지역에서 사육되고 있는 가금류는 닭 521만여 마리(428곳), 오리 94만여 마리(73곳)에 이른다. 이들 농가는 예년처럼 또 큰 피해를 입지 않을까 잔뜩 우려하고 있다. 농가들은 AI가 발생한 농장의 새끼 오리들이 전북과 충남북, 경기 지역 등 24곳에 공급된 것으로 알려지자 전국 확산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더욱이 이 농장과는 무관한 부안의 농가에서도 의심 사례가 발견되자 다른 경로를 통해 이미 널리 퍼진 게 아니냐는 공포감까지 돌고 있다.

육계·오리고기 유통업체와 대형마트 등은 아직 큰 영향은 없지만 고기의 안전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고창 지역의 한 닭고기 전문업체는 전날부터 비상상황실을 가동하고 정부의 AI 대응 매뉴얼에 따라 농가에 소독과 방역 등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닭고기 비수기인 데다 AI 확산 여부도 확인되지 않고 있어 아직 큰 문제는 없지만 이번 일로 닭고기 소비가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AI에 감염된 닭고기가 식탁에 오르는 일은 없는 만큼 소비자들이 안심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번 AI 발병은 2006년 이후 전북 지역에서만 23번째다. 방역당국은 그 원인 파악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발병 원인은 질병에 감염된 철새가 내륙의 가금류에 전파하는 바이러스라는 게 일반적인 가설이다. 전북 지역에는 만경강과 동진강, 금강 등 철새 도래지가 널려 있다.

230여명의 가금류 축산농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고창부안축협은 농가들과 함께 애를 태우며 방역에 앞장서고 있다. 김사중(68) 조합장은 “설을 앞두고 축산농가들에 피해가 오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고창=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