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하리 사막서 최신시설 정착촌 이주 부시맨들 “사냥터 있는 고향이 좋아”

입력 2014-01-18 02:37


아프리카 남부 보츠와나의 수도 가보론에서 북서쪽으로 540여㎞ 떨어진 도시 간지. ‘부시맨’으로 알려진 산(San)족이 주로 모여 사는 이곳에서도 다시 차로 1시간여를 가야 뉴제이드라는 도시가 나온다.

보이투멜로 로벨로(25)와 고이오트슨 로벨로(21) 자매는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더러운 물로 아이들 빨래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16년 전 자신들이 살던 간지에서 이곳 뉴제이드 정착촌으로 강제로 쫓겨나던 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날 경찰이 몰려와선 집을 부수고 주민을 강제로 트럭에 태운 뒤 이곳에 떨어뜨려 놓았어요. 우린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죠. 고향이 그립고 살던 방식이 그리워요. 고향에는 과일과 동물이 있었고 술집이나 술은 없었죠. 우린 모든 것을 잃었어요.”

로벨로 자매와 같이 칼라하리 사막에서 2만년간 수렵을 하며 살아온 산족이 터전에서 쫓겨나 생존위기에 몰렸다고 BBC가 16일 보도했다. 산족은 남아프리카에만 10만명가량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보츠와나와 나미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잠비아 등에 퍼져 있다.

보츠와나 정부는 1997년부터 칼라하리 사막지역을 중앙칼라하리 자연보호구역(CKGR)으로 지정하고 이곳에 살던 산족을 자동차로 반나절 이상 떨어진 정착촌에 강제 이주시켰다. 이들을 위해 학교와 병원, 상업시설도 만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정착촌인 뉴제이드에 사는 산족의 생활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신식교육을 받더라도 취업은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실업률이 올라가고 대책이 없어 정착촌에는 대낮에도 술집에 손님이 가득하다. 어린 소녀가 임신을 하거나 에이즈와 같은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보츠와나 정부는 정착민에게 가족당 다섯 마리의 소나 염소를 제공하며 목축과 농사를 장려하고 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사냥에 익숙한 주민들은 “소가 아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호소하고 있다. 주민들은 오히려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전통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라고 있다. 일부 주민은 체포를 무릅쓰고 금지구역에서 사냥을 하기도 한다.

주민과 인권단체들은 강제이주가 다이아몬드·메탄가스 채굴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의 한 다이아몬드 생산업체는 2011년부터 CKGR에서 겨우 45㎞ 떨어진 곳에서 채굴을 시작했다. 면적이 5만2800㎢에 달하는 칼라하리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 매장지다. 광산업은 보츠와나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다.

하지만 보츠와나 정부는 이런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강제이주는 자연보호구역 생태계 유지를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칼라하리 사막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야생보호구역으로 남아프리카지역에서 가장 많은 3만∼6만 마리의 코끼리가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츠와나 정부는 올해부터는 아예 주민들의 생활방식 중 하나인 사냥을 전면 금지시켰다.

정착민들은 사냥은 생태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서 정부의 조치로 자신들의 존재는 그저 관광상품에 불과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