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앱으로 알바생 감시하는 ‘빅브라더 사장님’
입력 2014-01-18 01:35
“근무시간에 휴대전화 만지지 말고 일만 열심히 해라.”
대학생 김모(20·여)씨는 지난해 12월 아르바이트(알바)를 하던 경기도 과천의 편의점 주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김씨가 근무하는 오후 시간에는 한 번도 매장에 나온 적 없는 주인이 그가 한 일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일주일쯤 뒤 김씨는 그 ‘비결’을 알게 됐다. 주인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매장에 설치된 CCTV 화면을 모니터링하며 수시로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은 김씨에게 “촬영된 화면은 언제든 보여줄 수 있다”면서 앱을 실행해 촬영 중인 CCTV 화면을 내밀었다.
결국 김씨는 한 달 만에 도망치듯 일을 그만뒀다. 그는 17일 “잠깐 휴대전화라도 만질라치면 사장이 바로 매장으로 전화하거나 ‘휴대전화 만지지 말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며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아 집안일 핑계 대고 그만뒀다”고 말했다.
취업난에 알바로 내몰리는 청년들이 ‘모바일 판옵티콘(Panopticon)’에 시달리고 있다. 판옵티콘은 1791년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원형감옥’을 뜻한다. 중앙에 감시탑을 세우고 원형으로 빙 둘러 수감자 방을 배치해 감독자 한 사람이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고 모든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는 구조다. 늘 감시당하는 세태를 비유하는 이 용어가 모바일로 옮겨 간 것이다. 스마트폰 앱이 발전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알바생이 늘고 있어 인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성공회대에 다니는 최모(22)씨도 지난해 6월부터 한 달 반 동안 서울 신촌의 PC방에서 알바를 했다. 첫날 점주는 해야 할 일을 설명해주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PC방에 설치된 CCTV 4개의 화면을 확인할 수 있는 앱이었다. 점주는 “지켜보다 일이 바쁘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실제 용도는 달랐다. 최씨가 카운터에 앉아 있으면 ‘자리 정리가 안 된 곳이 있는 것 같은데 정리해라’ ‘에어컨 계속 켜져 있는데 꺼라’ 등의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이후 최씨는 점주가 스마트폰으로 일을 지시하면 문자 답장을 보내는 대신 CCTV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등의 방식으로 ‘반항’을 했다고 한다.
점주들은 CCTV 앱을 매장관리용으로 설치했다고 말한다. 서울 강남구의 편의점주는 “스마트폰으로 알바생을 지켜보다 알바생이 친구를 불러 매장에서 같이 있는 걸 봤다”며 “바로 연락해서 친구를 내보내라고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에 감시하려 한 것은 아닌데 한 번 알바생이 친구 불러 노는 걸 보고선 자주 앱을 실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은 “늘 불안한 고용 환경에 놓인 알바생들을 스마트폰까지 이용해 24시간 감시하는 건 인권침해”라며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최소한의 감시체계만 운영토록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편의점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는 “CCTV 앱 이용은 본사의 방침이 아니라 점주들 개인의 선택”이라며 “문제가 된다면 실태를 조사해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