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조선의 UFO

입력 2014-01-18 01:35


요즘 화제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김수현은 약 400년 전 UFO를 타고 조선에 도착한 외계인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이상한 사건이 실제로 기록돼 있다. 1609년 9월 25일자 ‘광해군일기’에 나오는 ‘강원도에서 일어난 기이한 자연현상에 대해 강원감사가 보고하다’라는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그에 의하면 강원도 간성군, 원주목, 강릉부, 춘천부, 양양부에서 한 달 전인 8월 25일 오전 10∼12시 사이에 어떤 물체가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남쪽에서 북쪽으로 날아갔다고 되어 있다. 그 물체의 모양은 햇무리, 베, 호리병, 동이, 세숫대야 등의 형상으로 각각 다르게 묘사되어 있으나 대체로 둥글고 긴 물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유성 중에서도 특히 크고 밝은 것을 ‘불덩어리 유성’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지나가면 비적이라고 하는 밝은 잔상이 남는다. 레이더조차 실제 물체와 비적의 흔적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현대에도 UFO로 오인할 수 있다. 또 불덩어리 유성이 떨어질 때 대기충격파가 발생해 천둥 같은 소리가 나기도 한다. 이상한 물체가 날아갈 때 우레 소리가 들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강원도의 기이한 자연현상은 불덩어리 유성일 가능성이 높다.

이상한 물체가 목격된 바로 그 날짜의 광해군일기를 보면 한양과 평안도 선천군에서도 그 물체가 목격된 것으로 보인다. 한양에서는 ‘항아리만한 영두성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지나갔다’고 묘사해 놓았다. 영두성은 바로 낮에 떨어지는 유성을 일컫는데, 천문 관측 전문가들이 모여 있던 한양의 기록을 감안할 때 유성일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정하기엔 이상한 점이 많다. 유성은 조선시대에도 흔히 관측되던 천문현상으로, 여러 특이한 유성의 형상도 정확히 파악할 만큼 관측 기술이 높았다. 따라서 낮에 나타난 불덩어리 유성을 보고 강원감사가 조정에 직접 보고할 만큼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었다. 또 하나 의심쩍은 것은 강원도 양양의 품관인 김문위의 목격담이다. 이 집에서 목격된 세숫대야 같은 물체는 하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땅에 내릴 듯하더니 1장 정도 굽어 올라갔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가운데가 끊어져 두 조각이 된 후 한 조각은 동남쪽은 향해 날아갔고, 한 조각은 본래의 곳에 떠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묘사는 현대인들의 UFO 목격담을 마치 베낀 것처럼 닮아 있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