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희망지기-최슬기] 저는 이제 잘 알아요 꿈과 희망은, 연주할 수록 행복이란 날개 달아요

입력 2014-01-18 01:34


고난 딛고 서울대 음대 합격 최슬기

인생을 바꾸는 인연이 있다. 혈연, 지연, 학연 등 삶에서 다양한 계기로 맺는 인연은 때론 인생의 향방을 결정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최근 2014학년도 서울대 음대에 수시 합격한 최슬기(18)양에게도 ‘인연의 힘’은 큰 영향을 미쳤다. 최양에게 어릴 때 끊어진 부모 자식 간 인연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성장하며 맺은 여러 스승과의 연은 그가 세상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힘을 줬다.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부수석이자 트롬본 주자 제이슨 크리미(33)는 그에게 각별한 스승이다. 최양은 2008년부터 크리미씨에게 트롬본을 배우면서 전문 연주가의 꿈을 품었다.

13일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로 구세군 서울후생원에서 만난 키 173㎝의 제자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다소 무뚝뚝하게 그간의 삶을 전했다. 반면 스승은 능숙한 한국어로 시종일관 미소를 띠며 최양과의 인연을 설명했다. “선생님이 인생의 롤모델”이라고 최양이 말하자 크리미씨는 “나보다 훨씬 잘하는 연주자들도 많다. 그들을 참고하면 더 좋을 것 같다”며 재치 있게 답했다. 어느새 최양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찾고 싶은 얼굴, 부모님

최양은 9살 때 두 동생과 함께 아동복지시설인 구세군 서울후생원에 왔다. 처음 접하는 낯선 환경에 그는 적잖이 당황했다. 부모와 헤어진 뒤 삼촌 댁에서 잠시 지낼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더구나 여동생과 남동생을 돌봐야 하는 맏이로서 그는 두려움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적응도 쉽지 않았다. 규칙에 따른 단체생활은 그에게 ‘어디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심어줬다. 삶이 힘겨울 때마다 그는 부모를 원망하곤 했다.

하지만 미움과 원망도 상대가 명확해야 가능했다. 그는 부모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부모는 자주 집을 비웠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하는 도중 어머니가 집을 떠났다. 곧 아버지도 3남매를 삼촌에게 맡기고 떠났다. 이들을 오래 맡기 어려웠던 삼촌은 3남매를 아동상담소를 거쳐 구세군 서울후생원에 보냈다. 누군가를 원망할 틈도 없이 가정을 잃었다.

“우리를 떠난 부모님이 밉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녜요. 사실 지금은 얼굴조차 가물가물해요. 동생들도 마찬가지예요. 왜 그랬는지를 이해하니까 그런 마음이 없어진 거 같아요. 그간 돌봐준 삼촌에게 감사할 뿐이죠.”

3남매가 구세군 서울후생원에 온 뒤로 최양의 삼촌은 명절 때마다 이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후생원에서 외박을 허용한 날에도 최양 남매는 삼촌 집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삼촌을 꼽기도 했다. 시설로 보내긴 했지만 부모 대신 돌봐준 은혜를 잊을 수 없어서다.

성장하면서 여러 사람에게 적잖은 은혜와 사랑을 받았지만 최양은 지금도 부모님이 많이 그립다고 말했다.

“지금 제 기도제목은 ‘엄마 아빠를 빨리 만나는 거’예요.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찾고 있지만 삼촌도 행방을 모르셔서 쉽지 않아요. 만나면 그냥 ‘잘 지내셨는지’, ‘무슨 일 하는지’ 등 평범하고 일상적인 걸 물어보고 싶어요.”

음악은 날 웃게 했다

최양은 구세군 서울후생원 출신 ‘서울대생 1호’다. 그의 성장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이 같은 결과는 그의 실력뿐 아니라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희범 원장은 그를 ‘의젓하고 리더십이 있다’고 평했고, 김지현 과장 역시 ‘악대장 활동을 하며 리더십과 자신감을 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양은 본인이 원래 리더십 있고 당찬 성격은 아니라고 했다. 음악을 하면서 점차 성격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정말 말이 없는 편이에요. 말투도 무뚝뚝하고요. 내성적이라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브라스밴드에 들어가고 음악을 하다 보니 성격이 바뀌더라고요. 표정도 예전보다 많이 밝아졌고요. 악대장도 자원한 거예요. 물론 선생님께서 시키기도 했지만요.”

최양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브라스밴드에 들어갔다. 6살 때 피아노를 배워 평소 음악에 관심이 많던 그는 남들과 다른 독특한 악기를 다루고 싶었다. 그때 브라스밴드에서 발견한 악기가 트롬본. 당시 밴드 지휘자는 그에게 튜바를 권했다. 금관악기 중 크기가 큰 튜바가 키 큰 최양에게 잘 어울릴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트롬본을 고집했다. 연주하기 쉬운 악기는 결코 아니었지만 배운 대로 하다 보니 시원한 소리가 났다. 연주를 들은 이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자 점차 자신감이 붙었다. 그러나 적성을 찾은 기쁨도 잠시, 그는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중3 때 제가 좋아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음악이란 걸 알았어요. 진로를 정한 후 예고 입학을 알아봤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관악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가기로 결정했죠.”

방과 후 동아리 활동으로 관악합주반이 있는 신진자동차고등학교에 진학한 최양은 입학 후에도 트롬본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비용 때문에 다시 한번 인생의 갈림길에 서야 했다. 무엇보다 그는 두 동생을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꿈 때문에 동생들을 희생시킬 순 없었다. 취업하기로 결심하자 그를 가르쳤던 교사들이 만류했다.

“선생님들께서는 ‘음악은 여유 있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재능만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고, 뜻만 있으면 도움 줄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는 제게 열심히만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줬습니다.”

최양은 목표치를 최고로 잡기로 했다. 그는 서울대 기악과를 목표로 연습에 매진했다. 그러자 응원하던 이들조차 부정적인 견해를 내놨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예고출신 경쟁자를 이기긴 어렵다는 것이었다. 남들의 우려 섞인 시선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힘들 때면 ‘아빠 같이 든든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매일 7시간 동안 입술이 터지도록 연습했다. 그 결과 지난해 8월 서울대 총동창회가 주최한 관악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다시 매일 장시간의 연습 강행군을 이어간 최양은 서울대 음대 기악과 수시 합격이란 결실을 얻었다.

“합격 발표를 접했을 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실감이 안 났거든요. 시험 날 감기 기운이 있어 기대도 못했는데…. 하나님께 가장 감사했던 순간이었어요. 동생들 생각도 많이 났고요.”

연습벌레와의 의미 있는 시간

최양의 대학 합격 뒤 소감을 묻자 제이슨 크리미 서울시향 부수석은 ‘정말 뿌듯했다’는 표현을 썼다. 매주 최양에게 1시간 이상 트롬본을 지도한 그는 제자의 음악적 감성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에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올해 서울대 입학 문제가 정말 어려웠어요. 다른 연주자들도 ‘마치 대학원 입학시험 문제 같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슬기는 열심히 연습해서 해냈어요. 저는 가이드만 했을 뿐이죠.”

크리미씨는 2008년 서울시향이 개최한 브라스아카데미에서 최양을 처음 만났다. 그는 예의 바르고 착한 구세군 브라스밴드 단원이 마음에 들었다. 크리미씨는 최양을 ‘소리를 잘 내며 수업준비를 잘 한 학생’으로 기억했다.

“다른 학생과는 달리 슬기는 서울 유수의 대학에 입학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관심이 없는 학생을 가르치는 건 정말 어려운데 슬기는 그 반대였죠. 그의 상황을 아는 만큼 더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언제까지 한국에 있을 진 모르지만 있는 동안은 슬기를 가르치자’고.”

매달 2∼4번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슬기와의 수업’은 올해로 6년간 이어지고 있다. 남다른 재능에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제자에게 그는 종종 ‘너무 열심히 연습하지 말라’고 조언한 적도 있다.

“슬기는 수업 전 준비를 워낙 많이 하는 학생이라 혼낼 일이 거의 없어요. 다만 시험 전에는 연습을 줄이라고 주의를 줬어요. 입술이 터지면 실력 발휘를 할 수 없으니까요.”

미국 메릴랜드대와 줄리아드 음대에서 수학한 크리미씨는 2006년 서울시향 트롬본 주자로 한국에 왔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마카오 오케스트라에서 객원연주자로 참여했으며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트롬본주자인 조셉 아레시에게 배웠다.

크리미씨는 최양이 음악으로 진로를 정했을 때 가장 보람찼다고 했다. “슬기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이라는 결정을 했을 때 참 기뻤어요. 수업할 때 슬기를 보면 음악을 좋아하는 티가 많이 났거든요. 그만큼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중요했다는 거겠죠?”

음악으로 찾은 희망, 이웃에게도 전하고파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스승과 제자는 이날도 트럼본 연주에 대해 논했다. 입학 후 있을 앙상블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서울대에서 강사를 했던 크리미씨는 ‘누가 지휘를 맡는지’ 등을 꼼꼼하게 물었다. 흡사 오누이 같은 모습이다. 제자는 스승처럼 연주자가 돼 서울시향에 입단하는 것이 꿈이라 했다. 하지만 스승은 연주자의 길만이 정도(正道)는 아니라고 조언했다.

“반드시 연주자가 될 필요는 없어요. 요즘 음악계에도 할 만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교수나 고등학교 교사 등 여러 가지 일이 있지요. 저도 연주자지만 언제까지 이 일을 할지는 모르는 겁니다. 슬기,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해요.”

다음 달 최양은 정들었던 ‘집’을 떠난다. 고교 졸업 후 퇴소를 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그는 후생원 자립관으로 거처를 옮긴다.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에 대한 걱정도 컸지만 대학생활에 거는 기대 또한 컸다.

“대학 가면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어요. 제 또래에 비해 영어가 뒤처지는 거 같아서요. 그래서 지금부터 매일 2시간 이상 영어공부를 하고 있어요.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싶어요. 음악 하는 친구들 만날 생각을 하니 기대돼요.”

최양의 꿈은 하나 더 있다. 좋은 음악가가 돼 본인처럼 힘든 환경에서 음악가를 꿈꾸는 친구를 돕는 것. 지금까지 최양은 매주 악대장으로 밴드 후배를 가르쳐 왔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시간 날 때마다 계속 지도할 계획이다. “악기를 가르칠 때 무뚝뚝한 편인데 그래도 후배들 실력이 곧잘 느는 편이에요. 훗날 저도 음악으로 희망을 전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헤어질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하자 이들은 “앞으로도 만날 날이 더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앙상블 연습이 남았어요. 그리고 어쩌면 올해 강사로 서울대 강단에 설 수도 있어요. 그러면 이후로도 종종 볼 수 있겠죠.” 스승 크리미씨의 말이다. 아무래도 이들의 인연은 계속될 것 같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