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바둑 자존심 격돌] 전투형 VS 전투형 ‘용호상박’… 이세돌 9단-구리 9단 ‘10번기’ 대국 전망

입력 2014-01-18 01:33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불세출의 바둑 천재 이세돌 9단과 구리(古力) 9단이 오는 26일부터 10차례 벌이는 진검승부에 관심이 쏠린다.

나이(31세)와 입단연도(1995년)가 같은 두 기사는 2004년 처음 격돌한 이후 현재까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대전적을 보였다. 공식 기전만 따지면 구리가 이세돌에게 17승1무16패로 앞서 있지만, 비공식 기전까지 넣으면 이세돌이 18승1무17패로 우위에 있다. 백중세의 전적을 놓고 보면 두 기사가 벌이는 10번기도 팽팽한 접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빅매치에선 이세돌이 더 강해=다만 전적의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규모가 크고 중요한 경기에선 이세돌이 앞섰다는 점이 중요하다. 두 기사는 지금까지 세계대회 결승에서 세 번 맞붙었는데 2009년 LG배에선 구리가 이겼지만 2011년 BC카드배, 2012년 삼성화재배 우승컵은 이세돌이 가져갔다. 이를 포함한 세계대회 우승 횟수도 이세돌이 16회, 구리가 7회로 큰 차이가 난다.

국내 기전보다 상금 액수가 큰 세계대회에서 이세돌이 더 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상 최고액(8억7900만원)이 걸린 이번 10번기도 이세돌이 리드할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이번 대결이 이세돌에게 손해라는 지적도 있다. 이세돌은 이미 세계 최강임을 입증했기 때문에 10번기를 이겨 봤자 본전이고, 만에 하나 진다면 “구리가 이세돌을 능가하는 최강자”라는 해석으로 상황이 역전돼 버린다는 것이다. 한국기원 랭킹위원회 배태일 전문위원은 “이세돌이 이창호 다음 시대의 최강자라는 사실을 이벤트 기전으로 뒤집을 수는 없다”며 “이세돌과 구리의 10번기는 흥미로운 기획물이지만 이것을 너무 확대 해석하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30대 기사의 힘을 보여줘=배태일 위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세계 바둑랭킹(비공식)에 따르면 중국의 스웨(時越) 5단이 1위이고 이세돌과 구리는 2, 3위다. 또 1월 현재 자국의 공식 랭킹으로는 이세돌이 한국 3위, 구리가 중국 4위다. 현 시점에서 세계·국내 1위가 아니라고 해서 이세돌과 구리가 한물 간 것은 아니다. 지금 바둑계는 이창호가 천하를 평정하고 홀로 독주하던 시대가 끝나고 군웅이 할거하는 시대이며, 두 기사는 언제든 다시 치고 올라올 수 있다.

30대에 접어든 두 기사에게 이번 10번기는 절대고수의 힘을 다시 한번 보여줄 기회다. 현재 세계 바둑계는 중국의 1990년대 이후 출생자를 뜻하는 90후(後) 세대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세돌은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21세 탕웨이싱(唐韋星)에게 졌고, 구리는 멍바이허(夢百合)배 결승에서 18세 미위팅(米昱廷)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세돌과 구리로선 자신들의 힘이 다하지 않았음을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우칭위안 이후 사라진 10번기=이세돌은 “내 기억으로 정상급 기사들이 10번기로 맞붙었던 일은 우칭위안(吳淸源) 9단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10번기는 타이틀 제도가 없던 과거 일본과 중국에서 ‘치수(置數) 고치기’ 형태로 시행된 방식이다. 10번을 두면서 4승 이상 차이가 나면 치수를 고친다. 덤(흑이 백에게 몇 집 더 주는 것)이 없던 시절 대등한 상대끼리 흑과 백을 번갈아 두는 호선(互先), 하수가 흑으로 2번 백으로 1번씩 두는 선상선(先相先), 하수가 흑으로만 두는 정선(定先) 등으로 실력차를 교정하는 것이다.

10번기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20세기 최고의 기사로 현대바둑의 기초를 닦은 우칭위안이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17년(1939∼56년) 동안 기타니 미노루를 비롯한 당대의 일본 고수들과 차례로 10번기를 벌여 거의 모든 상대의 치수를 선상선이나 정선으로 고쳤다. 요미우리신문이 기획했던 이 10번기 시리즈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고, 일본 바둑을 평정한 우칭위안은 ‘기성(棋聖)’ 칭호를 얻었다.

이세돌과 구리의 10번기는 예전과 같은 치수 고치기는 아니고 먼저 6승을 거둔 쪽이 이겨 상금을 독식하는 방식이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빅 이벤트라는 점은 우칭위안의 10번기와 같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