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있겠지.’ 최윤(본명 최현무·61) 서강대 불문과 교수가 한 모임에서 삶의 목표를 말할 시간이었다. 눈앞에 새 국제판 성경(NIV)이 놓여 있었다. “만일 프랑스어 성경을 한국어로 풀이한 ‘불한성경’이 없다면 직접 만들고 싶어요.” 10년 전이다. 한국불어권선교회(CCMF)에 직접 문의해봤다. “아직 불한성경이 없습니다. 누군가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언젠가 펴내겠다고 마음먹었다.
30세 대학 교수로 임용. 39세 ‘회색 눈사람’으로 동인문학상 수상. 41세 ‘하나코는 없다’로 이상문학상 수상. 등단 6년 만에 한국 3대 문학상 중 2개를 받은 그다. 최 교수가 불한성경을 편집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이랬다. “최윤이 그렇게 단순한 작업을 한다고?” 지난해 6월, 한불수교 127년 만에 불한성경이 최초로 나왔다. ‘편집위원장 최윤.’ 그는 “어떤 작업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누렸다”고 했다.
불한성경 편집비용 ‘0’
영하 10도에 칼바람이 불던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백범로 서강대 최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춥죠? 얼그레이 괜찮으세요?” 주전자에 물을 담아 끓였다. 쿠키 포장지를 벗겨 방문자에게 건넸다.
-불한성경을 내셨다고 했을 때 놀랐습니다. 크리스천인 줄도 몰랐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어요. 2004년쯤 한홍 목사님과 함께 성경공부를 할 때 불한성경 비전을 선명하게 갖게 됐어요. 한참 잊고 있다가 2006년 안식년 말이었어요. 아침 기도 때마다 하나님이 제게 물으시는 거예요. 불한성경은 어떻게 됐냐고.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몇 분이 모였나요. 어디서 주로 회의하셨어요.
“2007년 초 서울 연남동 저희 집에서 강금희 김성규 김혜경 남성현 저 5명이 첫 모임을 가졌어요.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쯤 모여서 오후 3, 4시까지 토의했어요. 제가 도서관장할 때는 학교 회의실에서 모였죠. 점점 돕겠다는 분이 늘어 70여명이 참여했어요. 하나님이 전국의 불어권 교수 중에서 선교사들, 여러 불어권 전공자들을 정말 시시때때로 모아주셨어요.”
-매주 회의 때 식사비뿐 아니라 다른 비용도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요.
“(웃음)당연히 저희 집에서 같이 먹고 제가 대접했죠. 큰 즐거움이었어요. 지난해 안식년도 몽땅 바쳤죠. 초판 나온 뒤로 3주에 한 번씩 만나 추가로 교정을 보고 있어요. 6년6개월 동안 모두 다 봉사한 거예요. 편집비나 교정비에 든 돈은 없어요. 마지막 제작비만 신반포교회 등이 후원했어요.”
-불한성경이 지금까지 없었다는 게 의외입니다.
“전 세계에 불어를 모국어나 공용어로 쓰는 나라가 50여개국입니다. 불어권인 서부 아프리카는 중동으로부터 이슬람교의 남진을 막는 선교 베이스캠프예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인데 비해 그동안 우리의 관심이 적었어요. 초판 4000권 중 불어권에 있는 한인선교사 500∼600분에게 먼저 보내고, 한권 더 보내기운동을 하고 있어요.”
최 교수는 CCMF 이사다. 그는 불한성경이 불어권뿐만 아니라 국내 선교에도 폭넓게 쓰일 것으로 전망한다.
“저희가 사용한 불어성경은 78년 프랑스에서 나온 라콜롱브(la colombe) 판이에요. 아주 쉬운 불어로 정말 아름답게 표현했어요. 불어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이 성경으로 불어를 공부하고 국내에 체류하는 불어권 사람들도 이 성경을 통해 한국어를 배울 수 있을 거예요.”
‘오감(五感)’ 종합예술, 아들
난방 장치를 가동해도 금방 데워지지 않는 한기(寒氣)를 미안해했다. 두 시간 대화를 나누는 동안 최 교수는 서너 차례 차를 더 우려냈다. 그는 유쾌하게 얘기했고 큰 소리로 여러 차례 웃었다.
-언제부터 교회에 다니셨나요. 작가 중에는 크리스천이 많지 않은 걸로 아는데….
“여섯 살 때 동생을 업고 나갔다가 놀이터인 줄 알고 들어간 곳이 명륜중앙교회였어요. 전군명 목사님이 문을 여시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하나님이 보내주신 두 아기 천사가 들어왔네.’ 줄곧 주일학교에서 성장했어요. ‘신앙의 사막’ 프랑스로 유학 가서 방황했죠. 무교회주의에 끌리기도 했고요.”
-어떻게 다시 돌아오셨나요.
“프랑스 사상가 에르네스트 르낭이 쓴 ‘예수의 생애’가 저를 돌아서게 했어요. 예수님의 삶을 실증적으로 접근한 책이죠. 이건 비밀코드 2, 3개 풀어야 말할 수 있는 건데(크게 웃음). 1998년 아들을 낳아 제 품에 안는데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숭고함을 느꼈어요. 창조의 섭리를 깨달은 거죠.”
-늦둥이를 보셨네요. 아들이 정말 예쁘시겠어요.
“네. 제가 길 가다 ‘야, 토탈아트(Total Art)’ ‘종합예술’이라고 하면 아들이 돌아봐요. 제가 평소에 그렇게 불렀거든요. 아들의 성장이 저의 오감을 자극했어요. 아들이 사과를 씹으면 그 소리와 맛이 새롭게 느껴지고 아들을 안으면 그 살결에서 촉각을 재생하고요. 이 세상에 아들 이상으로 저를 감동시킨 작품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세대의 아름다운 초상, 문학
-이력을 보면 문학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가진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천만에요. 문학적 감수성을 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소설을 무수히 많이 쓰고 지워요. 제가 청년들에게 문학수업을 할 때 ‘네가 느낀 물상이 네 마음의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표현이 될 때까지 무수히 많이 쓰라’고 해요.”
-시대적 아픔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습니다. 오늘 이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한 학생이 쓴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봤습니다.
“2002년부터 제가 온누리교회를 출석하는데 청년들과 대화를 많이 해요. 전 윗세대보다는 아랫세대에 대한 기대가 커요. 하지만 이 세대가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어요. 소위 ‘힐링’ 열풍은 청년들의 약화된 저항력의 발로로 보여요. 도전하고 모험하기보다 위안받고 기대려는 게 아닌가 하고요.”
-교수님의 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어떤 것을 지향하나요.
“저는 문학이 한 세대가 아름다운 초상화를 그릴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성을 최대한 계발하고 일깨우는 거죠. 소설은 인간이 한계에 노출될 때 그 벽을 조금씩 밀어내는 작업을 하는 거고요.”
-세간에는 크리스천 작가로부터 깊이 있는 작품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들을 합니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영혼의 세계를 다뤄요. 삶의 놀라운 변전(變轉), 신앙이 주는 안정감과 지고함을 떠올려보면 전 그 말에 동의할 수가 없어요.”
-올해 계획은 어떻게 세우셨어요?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려고요. 벌써 새 학기 준비하느라 바빠요. 밀린 소설도 많고요.”
최 교수는 헤어질 때 소설집을 선물로 건넸다. 제목은 ‘첫 만남.’ 그러고 보니 소설가가 아닌 크리스천으로서 첫 만남이기도 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불한성경 최초로 펴낸 최윤 편집위원장 “佛韓성경 어찌됐니? 하나님이 물으셨죠”
입력 2014-01-17 17:41 수정 2014-01-18 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