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힘들지만 행복은 꼭 올거야… 뮤지컬 ‘메리골드’

입력 2014-01-18 01:33


메리골드(Marigold). 연극 ‘유츄프라카치아’로 유명한 극단 비유가 올해 새로 무대에 올리는 뮤지컬 제목이다. 햇빛을 많이 받을수록 활짝 피어나는 꽃이다. 꽃말은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죽으려던 이들이 극적으로 삶을 선택하는 과정을 담았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학교 순회공연용 뮤지컬 ‘4번출구(자 살자)’를 극장용으로 재연출했다.

작품 속 주요 등장인물 모두 신문이나 뉴스에서 본 자살자의 사연을 갖고 있다. 화니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 공부를 잘하고 선생님으로부터 귀여움을 받는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괴롭힌다. 건영은 소위 ‘일진’이다. 어릴 적부터 겪어온 아버지의 폭력에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건영은 분노심과 좌절감 속에 친구들과 싸움을 일삼는다. 건영이 때문에 자살한 친구도 있다.

보영은 전교 1등이다. 개그우먼이 되는 게 꿈이지만 엄마의 압박에 못 이겨 쉴 시간 없이 공부만 한다. 학교 친구들이 모두 적으로 느껴진다. 친구들이 자기를 죽일 거라는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2011년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고3 수험생이 1등을 강요하던 어머니를 숨지게 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정수는 ‘기러기 아빠’다. 아내와 자녀를 유학 보내고 홀로 외롭게 지낸다.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정수처럼 기러기 생활하는 이는 전국 1만2000여명에 달한다. 민아는 뚱뚱한 아가씨다. 가수 오디션에 붙었지만 뚱뚱하다는 이유로 기획사에서 무시당한다. 살을 빼려 헬스장에 갔다. 코치가 남자로 다가왔지만 민아를 이용하고 버린다.

이들은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가입한다. 카페운영자 동준은 자신을 자살 전문가라고 소개한다. “고통 없이 죽도록 도와주겠다. 여기로 와라.” 동준의 지시로 한 펜션에 모두 모인다. 그는 이들을 강력하게 통제한다. 한 곳에 모인 이들은 자기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여러분이 내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어줬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서로를 보듬는다. 죽음의 시간은 예정대로 다가온다. 동준은 유독가스를 튼다. 이들은 고통 없이 삶 건너편으로 가게 될까.

학교 폭력 피해자와 가해자, 성적지상주의에 억눌린 보영, 교육체제의 또 다른 희생양 아빠 정수, 외모제일주의로 상처받는 민아.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는 과정에서 위로받고 치유되는 모습이 극에 담겼다. 메리골드는 현실에서도 서로에게 작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극을 경쾌하게 만든다. 노래 ‘놀이’는 화니가 왕따 당하는 모습을 록으로 표현한 곡이다. 자살카페 운영자 동준은 라틴풍으로 자살자 집합소인 펜션의 규칙을 설명한다. 화니는 농약으로 자살하면 안 된다는 노래를 코믹하게 부른다. 여러 가지 자살 법에 대한 노래는 스윙 스타일로 나온다.

극단 비유는 2012년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뮤지컬 ‘4번출구(자 살자)’를 공연해 왔다. 비유는 “자살하지 말자는 말보다 더 필요한 한마디는 ‘잘 될 거야!’ ‘사랑해!’다”라며 “자살하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풀어내고 메리골드 꽃말처럼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지친 청소년과 학부모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1990년 창작연극 ‘창녀 마리아’로부터 출발한 비유는 99년 극단 ‘우물가’로 창단됐다 지난해 10월 비유로 이름을 바꿨다. 비유는 예수님이 하늘의 비밀을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말씀(마 13)한 데서 착안했다. 공연이 예수님의 비유가 되길 바란다는 의미다. 2003년 연극 ‘유츄프라카치아’를 처음 무대에 올렸다. 미 시각장애인 헬렌켈러와 스승 설리번의 실화를 소재한 연극이다. 유츄프라카치아도 꽃 이름. 꽃말은 ‘저를 사랑해주세요’. 10년 동안 장기 공연했다. 이정원 홍보실장은 17일 “우연찮게 꽃 이름이 연이어 제목이 됐다”며 “꽃말에 주제 의식이 잘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 달 9일까지 서울 명륜2가 열린극장. 3만원. 문의 비유(02-3143-6620).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