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이집트에 ‘군부의 겨울’ 오는가
입력 2014-01-17 01:36
이집트에서 군부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개헌안이 통과를 앞두고 있다. 가장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에 대한 국민 지지가 확인된 것이다. 군부에 막강한 힘이 실리면서 2011년 2월 ‘아랍의 봄’을 맞았던 이집트에 다시 겨울이 찾아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집트 관영 메나(MENA)통신은 15일(현지시간) 종료된 개헌안 찬반 투표에서 찬성표가 90%를 넘어서 개헌안 통과가 확실시된다고 16일 보도했다. 이집트 내무부 홍보담당관 압델 파타 오스만 소장도 “투표율이 55%를 넘어섰고 찬성표는 95%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당초 개헌 지지자들이 기대했던 70% 찬성률보다도 훨씬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현지 방송들은 투표가 진행된 14∼15일 수도 카이로 등 주요 도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길게 늘어선 장면을 보도했다. 일부 군부 지지 유권자들이 엘시시 장관의 대형 사진을 들고 나와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비쳤다.
개헌을 반대하는 이슬람 세력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무장 경찰과 군인들이 투표소 곳곳에 배치됐다. 실제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 일부는 도로를 막고 경찰을 향해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격렬히 대항했다. 투표 첫날에만 최소 11명이 숨지고 30여명이 다쳤다. 기자 지역의 법원 청사 앞에서 사제 폭탄이 터지기도 했다.
이번 개헌 투표는 지난해 7월 군부가 무르시 전 대통령을 축출한 이후 처음 치러진 국민투표다. 이집트 군부와 과도정부에 대한 국민의 첫 번째 평가대에서 국민들의 지지가 사실상 확인된 것이다. 개헌안이 통과되면 올해 중반쯤 총선과 대선이 치러진다. 이 경우 군부 최고 실세인 엘시시 장관이 차기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엘시시 장관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첫 민선 대통령을 축출한 쿠데타 주동자로 규탄 받고 있지만, 반무르시파 사이에서는 인기가 높다.
개헌안은 군부의 힘을 대폭 강화하고 이슬람 세력의 권한을 줄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어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 개헌안은 군사시설이나 군인을 향해 폭력을 가한 민간인을 군사 법정에 세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위가 발생할 경우 군부가 시위대를 무차별 탄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군 예산에 대한 민간 감시도 사실상 못하게 하고, 특정 종교에 기반을 둔 정당을 결성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집트가 ‘아랍의 봄’ 이전의 독재 시절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집트 전문가인 나단 브라운 조지워싱턴대학 국제관계학 교수는 “(개헌안 통과 이후) 이집트 국민들이 독재 대통령의 횡포를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로이터는 “엘시시 장관이 대통령이 된다면 무르시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사라졌던 군부 독재 정권 시절로 시간이 되돌아갈 수 있다”고 전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