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기로에 선 한국 외교 해법

입력 2014-01-17 01:34


“더 이상 전략적 차원의 호의를 베풀지 않는 미국을 냉정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명품에 대한 환호 때문에 프랑스의 위상이 높아 보일 뿐이라는 최근 뉴스위크지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유럽의 맹주 자리를 놓고 벌인 경쟁에서도 독일에 밀린 지 오래다. 그렇지만 동일한 역사적 전통을 가진 유럽은 EU로 새롭게 출범한 이래 그런대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지구촌의 관심은 온통 동북아에 모아져 있다.

끝없는 야망에 몸이 단 듯한 중국과 주변국의 반대 속에서도 군사력 강화와 우경화를 추구하는 일본의 틈새에서 한반도의 선택은 복잡한 함수를 풀어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두 나라 지도자들의 과도한 민족주의 노선 추구가 이웃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욕망을 제어할 줄 모르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전략 짜기가 쉽지 않다.

냉철한 분석이 먼저다. 미·중·일 3국과의 협력과 교류가 불가피하다면 힘의 추가 어디에 실려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시리아 내전 등을 통해 외교 전문가들이 유일한 경찰국가 미국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지만 여전히 세계 최강은 미국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한·중 양국에 날을 세우다 미국에 꼬리를 흔드는 일본이 이를 증명한다.

로마 이래 단일 국가가 압도적인 힘으로 이렇게 장기간 세계에 군림한 역사가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라는 데 대부분 국제정치학자의 견해가 일치한다. 한때 일본의 부상으로 미국이 지도적인 국가의 위치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관측도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말이 G2지 중국도 단 시일내에는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근본 동력과 철학이 주변국을 설득하지 못해 지역적 강국에 머물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이제 미국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고 추종의 대상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다만 이 시점에서 미국의 세계 전략을 다시 한번 곱새겨봐야 한다. 미국은 소련과 첨예한 경쟁을 벌였던 냉전시대와 달리 이제는 전략적 차원에서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 철저히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말이다.

긴장의 파고가 높아진 동북아에서조차 그런 조짐을 보인다. 이를테면 한·일 관계가 과거사와 독도 문제로 최고조의 긴장상태에 이를 경우 미국이 우리 편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한다면 착각 중의 착각이 될 것이다. 일본군위안부나 독도 문제에서 우리의 환호작약을 받는 미국의 수사(修辭)는 그야말로 외교적 언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위안부 결의안을 준수하라는 법이 하원을 통과했다고 고무될 필요도 없다. 강제력도 없거니와 자칫 내정간섭이란 오해를 부른다.

전략가인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을 다시 한번 찬찬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세계는 이미 유일 강국이 된 미국의 장이고 미국의 역할은 체스판과 같은 세계를 내려다보며 상대 말(국가)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해 말이 함부로 준동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있다는 극언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과거 만행 폭로로 대일본 심리전을 펼치는 중국도 미국과는 대립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 최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북아의 맹주 자리를 위해 일본과 기 싸움을 벌일 뿐이다. 따라서 미·중 관계는 겉으로 보기에만 긴장상태일 뿐 실제적으로는 일본과의 관계 못지않다는 증거가 많다. 미국에는 키신저를 비롯한 중국통이 즐비하다.

사실 미국의 일부 전략가들은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가질 것을 우리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속내를 잘 아는 그들로서는 한·중 관계의 강화가 한·미 관계의 소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일반적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의 능력이다. 오랜 세월 대미 외교에 주력하다 보니 중국 전문가가 전무하다시피 한 데다 이렇다 할 핫라인도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북한의 행동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라도 대중국 관계는 나아져야 한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