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대학가 ‘안녕들 하십니까?’ 바람 이번엔 여성비하 ‘김치녀’ 논쟁으로
입력 2014-01-16 17:37
대학가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김치녀’(사진)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대자보 내용이 알려지자 인터넷에서는 남녀 네티즌들의 말싸움이 치열합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처음 붙은 고려대 게시판에는 지난 15일 오후부터 김치녀를 주제로 한 대자보가 연이어 붙고 있습니다. 김치녀는 ‘된장녀’라는 말처럼 여성을 비하하는 말입니다. 허영심 많은 여성을 의미하는 된장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김치녀는 남성들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여성을 총체적으로 지칭한다는 겁니다.
첫 대자보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학생이 썼습니다. 이 학생은 “예쁜 사람을 질투했거나, 군대이야기를 사랑스럽게 들어주지 않았거나, 학벌과 임금이 남성보다 낮거나 높거나, 내숭을 떨었거나, 성형을 하고 예쁘거나 안하고 못생겼거나, 성 경험이 많거나, 성에 대한 남성의 요구를 거절하거나 등등의 많은 이유로 김치녀라고 불린다”고 적었습니다.
그 옆에는 역시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학생이 ‘김치녀로 호명되는 당신, 정말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붙였습니다. 그는 “한국여성 누구도 김치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며 남성들의 이중 잣대를 비난했습니다. 그리고는 “김치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검열을 하는 것은 아닌지, 여성혐오가 보편적인 사회에서 정말로 안녕하신지 묻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루 뒤인 16일에는 화답하는 대자보 2개가 붙었습니다. ‘고민 많은 10학번 여학생 C’라고 밝힌 한 학생은 ‘김치녀가 될 수밖에 없어서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대자보로 응답했습니다. 그는 “취업 시장에서 최고의 스펙은 남성이고 김치녀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건 각박한 세상”이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평범한 여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남성을 만나야 하는데, 그러려면 젊고 예뻐야 한다고 김치녀가 될 수밖에 없는 사연을 적은 겁니다.
스스로를 ‘민경’이라고 밝힌 여학생은 ‘개념녀가 되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해서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대자보를 걸었지요. 그는 “명품 가방 안 좋아하고 스타벅스 커피 안 마시고 남자들과 된장녀를 욕하면 개념녀가 될 줄 알았다”며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힘든 현실을 토로했습니다. “연애를 하면 상대와 섹스를 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처녀여야만 하고…. 어떻게 해야 개념녀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이들의 솔직한 토로가 인터넷에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은 술렁이고 있습니다. 한 여성 네티즌은 “젊고 예뻐야 취업도 결혼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에게 김치녀는 형벌”이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한 남성 네티즌은 “남녀 모두 스펙만 보려는 세상에 남자가 취업과 결혼에서 여성보다 더 힘들다”고 반박했습니다. 남성들이 모두 ‘여성혐오’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적지 않았죠. 여성대통령 시대가 시작됐지만 김치녀를 둘러싼 논쟁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정훈 기자 oik416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