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는 다시 읽을 때 큰 감동… 11번째 시집 ‘사진관집 이층’ 출간 팔순의 ‘작은 거인’ 신경림 시인
입력 2014-01-17 01:31
태양의 시인이 있는가하면
월광(月光)의 시인이 있다.
신경림은 후자이다.
그의 시는 늘 존재의
그늘에 뿌리를 박는다.
양지보다 음지에 선 한 그루 겨울나무
은 시인. 올해 팔순을 맞은 그는
최근 낸 열한 번째 시집
‘사진관집 이층’(창비)에서 눈이 흐려져
더 잘 보이는 게 있다고 말한다.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서울에 별이 보인다.// (중략)//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별’ 부분)
시집엔 인생의 저물녘, 어두울수록 더 잘 보이는 것들이 별처럼 박혀있다. “이 지번에서 아버지는 마지막 일곱 해를 사셨다./ 아들도 몰라보고 어데서 온 누구냐고 시도 때도 없이 물어쌓는/ 망령 난 구십 노모를 미워하면서,/ 가난한 아들한테서 나오는 몇푼 용돈을 미워하면서,// (중략)/ 남편의 미운 짓이 미워 눈물 한 방울 안 보일/ 아내를 미워하면서/ 시신을 덮은 홑이불 밖으로 나온/ 그의 앙상한 발을 만지며 울 막내를 미워하면서”(‘안양시 비산동 498의 43번지’ 부분)
옛일은 아름다운 추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잊고 싶을 것도 없지 않다. 마흔 살 신경림의 봄이 그랬다. “웬 낯선 사람이 들어와 자느냐고 고함을 지르는 할머니와/ 아들도 몰라보는데 화가 난 아버지가 대들어 싸우던,/ 나는 그 봄이 싫다./ (중략)/ 통금에 쫓겨 헐레벌떡 돌아오면 늦도록 기다리다/ 문을 따주던 아버지의 앙상한 손이 싫다./ 중풍으로 저는 다리가 싫고/ 죽은 아내의 체취가 밴 달빛이 싫다”(‘나의 마흔, 봄’ 부분)
지난 14일 서울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겨울 햇살의 잔광을 등지고 앉은 그에게 팔순을 맞은 소회를 물었다. “팔순에 새 시집을 냈다는 게 내가 봐도 좀 멋쩍긴 해(웃음). 그렇다고 내가 시인이 되기를 잘했느냐하면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다른 길은 가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지. 소설은 한번 읽으면 두 번 다시 읽기 힘든데, 시는 자꾸 반복해서 읽게 되지. 시는 다시 읽는 감동이 있어. 시가 갖는 힘이 그것이지. 언어가 갖는 힘이 나이 들수록 느껴져.”
그가 말하는 언어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시편이 시집엔 여럿이다. 팔순에 시인으로서의 절정에 이르렀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그런 시들이다.
“눈 속으로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산이 있고 논밭이 있고 마을이 있고/ 내가 버린 것들이 모여 눈을 맞고 있다./ 어떤 것들은 반갑다 알은체를 하고 또 어떤 것들은 섭섭하다 외면을 한다/ (중략)/ 눈 속으로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가 내가 버린 것들 속에 섞여 나도 버려진다./ 나로부터 버려지고 세상으로부터 버려진다.// 눈 속으로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나는 한없이 행복하다./ 내가 버린 것들 속에 섞여 버려져서 행복하고 나로부터 버려져서 행복하다.”(‘설중행’ 부분)
‘나로부터 버려져서 행복하다’는 경지. 언어의 힘은 거기서 나온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는 버렸던 것을 다시 찾았음에도 그걸 다시 버리는 또 다른 경지도 보여준다. “버렸던 것을 되찾는 기쁨을 나는 안다./ (중략)// 하지만 나는 저세상 가서 그분 앞에 서면/ 당당히 빈손을 내보일 테야./ 돌아오는 길에 그것들을 다시 차창 밖으로 던져버렸으니까./ 찾았던 것들을 다시 버리는 기쁨은 더욱 크니까.”(당당히 빈손을’ 부분)
그는 2009년 50주기를 맞아 망우리 공원묘지에 있는 죽산 조봉암의 묘소를 찾았던 일화도 들려주었다. 죽산은 이승만 정권 당시인 1959년 7월 평화통일을 주장한 것이 빌미가 되어 간첩죄로 처형당했지만 2011년 대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젊은 시절에 죽산 연설회를 쫓아다녔지.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익희 선생 연설엔 수십만 명이 운집한 반면 죽산의 연설엔 겨우 백여 명이 모였더랬지. 대세를 쫒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죽산에게 간 건데 현실에서 만족 못하는 것을 그에게서 보고자 했던 거야. 50주기 때 묘소를 찾았더니 당시 연설회장에서 봤던 사람들이 있는 거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어. 그건 정치적인 것은 아니고 젊은 시절의 이상주의였지만.”
죽산 묘소에 다녀온 뒤 쓴 시가 있다. “아무렇게나 죽여 아무렇게나 묻은 곳이 시내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명당이다. (중략) 이 명당 덕에 그가 사랑한, 그를 죽은 나라가 번창하나보다 이런 덕담을 주고받으며.”(‘빨간 풍선’ 부분)
그는 3년 전, 일어 성경을 완독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막내 동생이 크리스천인데 일어 공부를 겸해서 성경을 읽어보라고 갖다 줬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해방을 맞았기 때문에 일어 실력이 좀 딸리는 데 그래도 꼭 읽어보고 싶어서 사전을 찾아가며 몇 달에 걸쳐 신약을 완독했지. 난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성경엔 인간으로써 살아가는 온갖 지혜와 서구의 온갖 신화의 기원이 숨겨져 있어 정말 완독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해.” 노시인의 눈망울은 창밖의 겨울 너머 봄을 보고 있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