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샐린저 은둔은 친구 헤밍웨이 자살 때문?

입력 2014-01-17 01:31


샐린저 평전/케니스 슬라웬스키/민음사

전 세계에 7000만부가 팔려 ‘콜필드 신드롬’(콜필드는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이름으로 10대들의 반항을 일컬음)을 일으킨 ‘호밀밭의 파수꾼’(1951)의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1965년 마지막 작품 ‘1924년, 햅워스 16일’을 끝으로 침묵을 지켜온 그는 2010년 1월27일, 91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다음날 그의 대리인이 발표한 사망 소식은 사실상 세상을 향한 샐린저 자신의 유언이었다. “샐런저씨는 자신이 이 세상에 있기는 했지만, 거기에 속해 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1965년 이후 수십 년간 뉴햄프셔주 코니시라는 작은 마을에 머물며 문단에 나타나지 않았다. 샐린저 생전에 랜덤하우스(이언 해밀턴)가 출간한 ‘샐린저 전기’로 인해 법정 공방에까지 가게 된 그는 ‘전기’에 인용된 개인적 편지, 신상 정보, 자신이 언급된 모든 인터뷰 기록을 삭제시켰고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저작권법 판례가 되었다. 샐린저가 살아 있는 동안 그의 ‘전기’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기획이었다.

하지만 2010년 5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최고의 샐린저 웹사이트(deadcaulfields.com) 운영자인 케니스 슬라웬스키는 7년간에 걸친 집필을 통해 ‘샐린저 평전’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건 획기적인 평전이었다. 생전엔 절대 공개될 수 없었던 편지들은 물론 알려지지 않은 미발표 작품과 초기 단편들, 유진 오닐의 딸 우나 오닐과의 사랑과 파경 등 사생활의 전모가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생활보다 중요한 것은 샐린저가 왜 은둔을 선택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1961년 7월 2일, 전쟁 당시 샐린저의 친구이자 힘이 되어 주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아이다호의 자택에서 자살했다. 6주 후인 8월 18일에는 샐린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러니드 핸드 판사도 뉴욕에서 숨을 거두었다. 샐린저가 의도적으로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택한 것은 아니다. 고립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내면에서 은밀히 진행되었다. 더 슬픈 사실은, 그가 고독의 그림자를 감지하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483쪽)

평전의 진가는 저자가 이전의 샐린저 전기 작가들이 취했던 관음증적 시각과 비평가적 거만함을 버리고 샐린저 작품의 진화를 추적하고, 선(禪) 사상으로의 경도 등 사상적 변화를 살피는 데 주력했다는 점에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