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책] 숭배받던 곰, 악마로 둔갑한 사연은…

입력 2014-01-17 01:32


곰, 몰락한 왕의 역사/미셸 파스투로(오롯·2만3000원)

유럽에서는 기원전 10세기 무렵부터 곰을 야성의 상징이자 동물과 인간 세계를 이어주는 특별한 존재로 숭배해왔다. 숲의 포식자 곰은 한편으론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어서 각 문화권마다 곰을 직접 명명하는 대신 완곡한 표현법을 동원해 불렀다. 영어의 곰(bear)이란 단어는 게르만인들이 곰의 털빛을 의미하는 ‘갈색(bher, berun)’으로 곰을 부른 데서 유래했다. 게르만과 슬라브 지역의 용맹한 전사들은 곰의 피를 마시거나 곰 변장을 하고 의식을 치르곤 했다.

곰의 지위를 가장 먼저 위협한 이는 로마제국 이후 처음으로 서유럽을 정복한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였다. 그는 이 지역 야만인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이교도 문화의 근원인 곰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773년과 785년, 계획적이고 대대적인 곰 학살이 일어났던 이유다. 이후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곰에게 악마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작업이 시작됐다. 11세기부터는 곰을 대신해, 유럽에선 흔히 볼 수 없는 동물인데도 사자가 동물의 왕 자리에 오른다. 책은 13세기에 막 내리는 ‘곰의 몰락사’를 그리고 있지만 사실상 ‘곰에 대한 중세 교회의 투쟁사’이자, ‘동물의 위계를 통해 보는 서양 문화사’라고 할 수 있다. 주나미 옮김.

김나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