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봅시다] 장애인이 노인 됐다고… 반토막 난 서비스

입력 2014-01-16 02:33


장애인 활동지원, 65세 이후 노인요양 되면 月 180시간→90시간 뚝

잠이 더 오면 좋으련만. 14일 오전 6시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앞으로 2시간. 할 수 있는 일은 천장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옆방 엄마 걱정도 지금은 잊는 게 좋다.

다섯 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 오른손을 제외하면 전신을 쓰지 못하게 된 1급 지체장애인 이미자(가명·68)씨. 그의 하루는 오전 8시 서울 개포동 임대아파트에 요양보호사 김지영(가명)씨가 도착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탁탁탁. 지영씨 발소리가 들리면 이씨의 마음은 바빠진다. 지영씨의 도움을 받아 전동 휠체어에 올라탄 이씨는 제일 먼저 엄마가 잠든 옆방으로 갔다. 올해 102세 노모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무데도 안 가셨네. 다행이다.” 그제야 밤새 참은 화장실 생각이 났다. 지영씨의 도움으로 용변을 보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니 벌써 오전 10시다. 8시에 온 지영씨는 낮 12시면 떠난다. 지영씨가 머무는 4시간 동안 이씨는 가능한 한 자주, 많이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가려운 곳을 긁고 전화를 걸고 쇼핑을 해야 했다. 요즘엔 노모 챙기는 게 큰일이다. 몇 년 전부터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엄마는 며칠 전 새벽 외출하겠다고 옷까지 챙겨 입는 소동을 벌였다. 지영씨가 없는 새벽 2시. 이씨는 “엄마, 왜 그래”라는 말만 반복하다 그만 울고 말았다.

오늘은 서두른 덕에 산책할 시간이 생겼다. 바깥바람 쐬며 산책하는 낮 12시 무렵은 이씨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자 가장 불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영씨가 떠날 때가 가까워오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의 하루가 4시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씨는 지난 몇 년간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대상자로 하루 7∼8시간, 월 180여시간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왔다.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생존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해 5월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이씨가 ‘만 65세 이상 노인’이기 때문에 노인 장기요양 서비스 대상이 됐다는 통보였다. 당장 서비스 시간은 월 90시간, 주 5회, 하루 4시간으로 반토막났다. “그 뒤로는 제 하루가 4시간이 됐어요. 4시간으로 하루 세 끼 다 챙기는 건 사치예요.” 이씨가 말했다.

만약 이씨가 비교적 거동이 자유로워 노인 장기요양 서비스 ‘등급 외 판정’을 받았다면 서비스 시간이 더 긴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의 수혜자로 남을 수 있었다. 장애가 심해 인정 심사를 통과한 결과는 ‘더 적은 서비스’였다. 장애가 심할수록 서비스가 깎이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것이다.

원인은 지난해 개정된 보건복지부 지침 때문이다. 새 지침에 따라 장애 노인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등급 외 판정’을 받아야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2012년에는 활동 지원과 장기요양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실에 따르면 2011∼2013년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신청 자격을 가진 만 65세 이상 장애인 1542명 중 373명(24%)이 이씨처럼 ‘장애가 심해 서비스를 덜 받게 된’ 노인 장기요양 수급자로 분류된다.

굿잡장애인자활센터 이순희 국장은 “전신을 쓰지 못하는 지체장애인들은 장시간 혼자 두면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된다”며 “장애인이 장애 노인이 됐다고 서비스를 깎는 건 어떤 이유로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사진=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