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 치매 시설 르포] 남양주 북부노인주간보호센터, 노래하고 춤추며 뇌 자극 ‘老치원’
입력 2014-01-16 02:32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꽃∼배에. 둥둥. 챙챙.”
지난 14일 경기도 남양주의 북부노인주간보호센터. 오후 3시가 되면 어김없이 탬버린, 북소리와 뒤엉킨 노랫가락이 센터 가득 울려 퍼진다. 치매노인을 위한 음악치료 시간이다. 음악소리가 흘러나오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색한 동작으로 갖고 있던 악기를 두드린다. 그렇게 각자의 리듬과 속도로 뒤엉킨 음악은 흡사 연습 안 된 초등학생들의 합주처럼 시끌벅적했다. 그들 틈에서 조정례(88) 할머니가 손에 든 캐스터네츠를 만지작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조 할머니가 이곳 센터에 온 건 4년 전이다. 막내 딸 이정숙(56)씨가 치매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조 할머니를 모신 지 1년 남짓 되던 때였다. 센터에 오기 전까지 조 할머니의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새벽마다 베란다에 나가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이웃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가 15시간 넘게 행방불명된 적도 있다. 수발 부담에 이씨는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
그 무렵 이씨는 북부노인주간보호센터 얘기를 들었다. 2007년 문을 연 센터는 치매 및 뇌졸중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지난해 하반기 정부의 치매특별등급 시범사업에 선정된 뒤부터 경증치매환자 2명을 포함 총 21명의 치매노인들을 낮 시간 동안 돌보는 일종의 ‘치매 유치원’ 역할을 하고 있다.
매일 할머니와 씨름하던 이씨에게 센터는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아침 9시면 센터 버스가 어머니의 ‘등교’를 위해 도착한다. ‘하교’는 저녁 7시쯤이다. 이씨는 센터를 ‘노치원’이라고 부른다. 노인들이 다니는 유치원이라는 뜻이다. 어머니를 노치원에 보낸 뒤 이씨는 직장을 다시 잡았다. 아이들을 돌볼 여유도 생겼다.
비슷한 시기 어머니와 함께 센터를 찾은 전보영(68)씨도 센터에 어머니를 보내면서 조금씩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전씨는 치매 어머니를 보살피다 신경성고혈압에 저체온증, 척추협착증을 얻었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 병원을 가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다. 치매 어머니에게서 눈을 떼면 당장 사고가 났다. 어머니가 가스레인지 레버를 돌려 불이 날 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 뒤로는 집 앞 슈퍼를 갔다 오는 것조차 겁이 났다. 지금은 어머니를 센터에 보낸 뒤 낮시간을 이용해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고 노인대학에도 다닌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상태가 좋아진 게 가장 기뻤다.
전씨는 “예전엔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이니까, 내 엄마니까 당연히 같이 있는 것이 최선인 줄 알았다”며 “이곳 센터처럼 주간에만 돌봐주는 시설은 완전히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가족 부담도 덜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북부노인주간보호센터 김동문 대표도 “이제는 가족들도 시설을 이용하는 게 치매부모나 배우자를 버리는 게 아니고 돕는 길이라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경증치매환자를 위해 요양 서비스를 확대하는 치매특별등급 시범사업을 남양주 등 전국 6개 지역에서 벌이고 있다. 7월에는 5만명 안팎을 대상으로 본 사업이 시작된다.
남양주=황인호 기자 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