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시대, 패러다임을 바꾸자-③] 저성장 극복 중장기 플랜을 짜라
입력 2014-01-16 01:35
재정투입 위주 성장 벗어나야 장기불황의 늪 탈출
‘잠재성장률(완전고용 상태에서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최대 성장능력)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경제 비전이다. 외형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우리 경제 현실을 고려하면 ‘장밋빛 전망’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저출산·고령화, 구조적 내수부진, 가계부채 등 곳곳에 지뢰밭이 산재한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 변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4·7·4 비전’이 말의 성찬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가 투자 활성화를 중심에 두고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본식 장기 불황의 그림자=인구 구조 변화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 중 하나다. 현재 한국의 고령화 진행 속도는 일본보다 훨씬 빠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2012년 18.3%에서 2032년 41.9%로 20년간 연평균 1.1% 포인트씩 상승한다. 이는 일본이 1990년 12.1%에서 2010년 23.0%로 연평균 0.5% 포인트 상승한 것의 배가 넘는 수치다.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됐던 1990년대 일본식 저성장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15∼64세) 역시 2017년부터 하락해 2032년에는 3215만명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2012년(3656만명)보다 약 10% 줄어드는 것이다. 경제 활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의미다. 특히 노후 대비가 부족한 현실에서 고령층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소비 부진을 고착화시킬 우려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설비투자는 경기 회복의 최대 걸림돌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8.3% 감소했던 설비투자는 지난해 3분기 1.5%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경제지표 가운데 회복세가 가장 미진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5일 “투자가 최근 회복되는 모습은 있지만 여전히 미진하다”며 “대내외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 성장에서 탈피해야=올해의 관전포인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됐던 공공부문 중심의 성장 체제에서 탈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민간의 성장기여도는 4.0%였지만 금융위기 이후 민간의 성장기여도는 2.9%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잠재성장률이 4.6%에서 3.5%로 하락한 것을 고려하면 재정 투입이 경기가 추락하는 것을 지탱한 셈이다.
특히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경기를 부양해 왔다. 2009년에는 28조4000억원 규모의 ‘슈퍼 추경’을 했고, 지난해에도 17조3000억원에 달하는 추경을 편성했다. 하지만 재정 투입 위주의 성장은 현상유지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재정 건전성 문제도 심각하다. 올해 국가부채는 514조8000억원(국내총생산 대비 36.4%)에 이를 전망이다. 2008년(309조원)에 비해 200조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정부가 올해 상반기 예산 집행률을 55%로 잡은 것도 재정 위주의 성장을 탈피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는 경기 침체에 따른 대응책으로 2012년과 지난해 상반기에 예산의 60%를 집행했다. 하지만 민간의 체력이 회복되지 않아 4분기에는 상반기 조기 집행에 따른 예산 부족을 걱정해야 했다.
◇투자 활성화, 약발 먹힐까=정부는 최근의 경기 회복세를 민간 부문으로 확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음달 발표될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분기마다 발표키로 한 투자 활성화 대책에서는 내수 부진과 함께 경제체질 개선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될 전망이다. 교육·금융·관광 등 생산성이 떨어지는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고 지역 특화산업을 지원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다만 투자 활성화 효과가 중소·중견기업에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맞춤형 세제 지원 등 혜택도 늘려갈 계획이다.
투자 관련 규제 완화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규제를 백지상태에서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한 만큼 입지뿐 아니라 환경 분야 규제가 대대적으로 수술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창조경제의 밑그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정부의 과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산업경쟁력 측면에서 조선이나 철강을 대체할 산업 비전이 보이지 않고 저출산, 고령화가 이어지면서 우리 경제가 장기적으로 저성장 구조로 갈 가능성이 있다”며 “새로운 성장산업 동력을 찾고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